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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미-중 신경전과 제주해군기지 / 정욱식

등록 2011-06-10 19:19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화기애애했지만 각자가 품은 야심마저 숨길 순 없었다.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 주최로 이달 상순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0차 아시아 연례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나온 미국과 중국 국방수장의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회의에는 다음달 퇴임을 앞둔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함께, 10년 만에 중국의 국방부장인 량광례가 참석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게이츠는 이 회의에서 “미국은 (글로벌 파워로 성장한) 중국을 억누를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량광례 역시 “중국은 결코 패권이나 군사적 팽창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국방장관은 별도의 회담을 통해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립서비스’는 여기서 끝났다. 게이츠는 중국을 겨냥해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군의 개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경제위기와 재정적자,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개입 수준을 늘려나가겠다는 의미이다. 그는 특히 “난사군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필리핀·베트남의 영유권 분쟁이 고조되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서 선박 운행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된다”며, 이 문제로 인해 자칫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량광례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국제안보협력 4대 원칙을 밝혔는데, △상대국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에 대한 주의 △상대국 전략 의도에 대한 포괄적 이해 △제3국과의 대립을 위한 동맹 금지 △세계 각국의 아시아 안보 기여 환영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에 대한 주의’ 및 ‘제3국과의 대립을 위한 동맹 금지’이다. 중국이 이런 원칙을 강조한 데에는 미국이 남중국해,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대만해협, 서해 등에서의 갈등을 이유로 한국 및 일본에 이어 베트남, 필리핀 등과 군사 동맹 및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강한 경계심이 반영돼 있다.

이런 양국 국방수장 사이의 신경전은 ‘주요 2개국’(G2)이라고 불리는 미-중 관계의 현실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두 나라의 전략은 한마디로 ‘협력을 추구하되, 갈등에 대비하고, 충돌도 불사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양면 전략’(hedging strategy)으로 불리는 이런 접근은 일종의 ‘거울영상효과’를 수반해 양국 사이의 신뢰 구축 및 군비경쟁 종식에 근본적인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이 전략적 중심축을 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겨 해군력의 60%를 집중하고 있는 것도, 중국이 이에 맞서 국방투자의 상당부분을 해군력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내외의 많은 전략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미-중 관계의 향방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이익과 비전에 가장 중대한 변수이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단일패권이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 아래 미국과 ‘전략동맹’을 추구했지만,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 교차하고 있는 오늘날, 이런 전략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도 이런 거시적이고도 전략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SOFA),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제주해군기지를 이용할 권리를 원칙적으로 갖고 있다. 공교롭게도 제주해군기지는 남중국해-동중국해-센카쿠열도-대만해협-서해로 이어지는 미-중 ‘갈등의 바다’의 요충지에 건설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의 ‘유사시’ 이 기지를 사용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한국이 중국과의 충돌을 우려해 미국의 기지 사용을 막는다면 ‘동맹의 파기’까지 감수해야 한다. 반면 미국의 기지 사용을 용인하면 중국과의 갈등, 특히 중국의 해양수송로 봉쇄에 따른 ‘국가의 존망’까지 우려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 외교안보전략의 최대 과제가 한-미 동맹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중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면,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이런 전략적 목표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안보’와 ‘국민경제’를 위해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중단해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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