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새로운 흐름 중 적지 않은 부분을 ‘홍대 앞’ 바깥의 사람들이 만들었다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때는 1세대 인디밴드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이 합동으로 연 제주 공연을 본 열다섯살 무렵이었다. 서울 홍익대 앞, 줄여서 ‘홍대 앞’에서 등장했다는 인디음악을 직접 눈앞에 두고 보니, 그것은 소문 이상이었다. 수십명이 서 있기도 비좁은 클럽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바닥 위에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와중에 피아노학원 한 번 안 다녀본 중학생은 밴드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때부터 홍대 앞은 내 음악 세계의 ‘서울’이 되었다. 재미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비록 지금은 여기에서 밴드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홍대 앞에서 활동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품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을 가게 되었고, 제주를 ‘탈출’하여 서울로 향하게 되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찾아갔으나, 정작 실제로 찾은 홍대 앞은 기대와 달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재미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이미 본 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애초에 홍대 앞에 매력을 느끼게 만든 노래들, 내가 쓰는 것과 같은 말로 나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던 그런 특별한 노래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대신 엇비슷한 것들이 동종교배한다는 느낌이 만연했다. 결국 이러한 기시감에 질려 버린 나는 점차 흥미를 잃어 더는 홍대 앞을 찾지 않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흥미를 잃건 말건, 그동안에도 인디음악이라고 하면 홍대 앞을 연상할 정도로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심지어 홍대 앞에서 벗어나 다니고 있던 학교 근처에 새로운 판을 짜보려던 나도 어김없는 실패를 맛보고 결국엔 홍대 앞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무렵 다시금 홍대 앞에 새로운 활력이 감돌기 시작했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런 흐름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홍대 앞 바깥에서 활동하던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가까이는 우리가 활동했던 서울 관악구로부터 인천, 안성, 멀리로는 저기 뉴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에서 외부와는 어느 정도 단절된 상태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새로운 감성의 음악을 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흐름이 이미 홍대 앞에 있던 기존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2007년 이후 인디음악이 다시 대중적인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홍대 앞’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매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것을 보고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의 경우의 수는, 아무리 그들이 창의적인 인간이라 하더라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게 단순히 음악만의 문제는 아니다. 홍대 앞을 서울 내지 수도권으로 바꿔 생각하면, 엇비슷한 아파트와 상가와 빌딩이 가득 찬 환경에서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생각의 방식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 바깥 지역을 뭔가 덜떨어진 것으로 만들어 그곳에 있는 이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서울로 오는 것이 성공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현재와 같은 구조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킨다.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것을 경험하며 자라고 생활하는 이들의 감성이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중심지-홍대 앞 혹은 서울-가 모든 것을 빨아먹는 식으로 끝나버린 경우가 많다. 중요한 전제는 포항, 남원, 양구, 익산 등의 여러 지역이 자생적으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단지 중심 바깥의 그곳들이 낙후되었기에 그것을 보상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바로 그곳에 새로운 생각과 감성이 만들어질 수 있는 대안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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