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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우리의 집권 / 김규항

등록 2011-06-20 19:22수정 2011-06-21 09:59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25년간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온
집권강박을 떨쳐내야 한다
누차 밝힌 대로, 나는 다가올 선거에서 진보정치 세력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세력과 연합하는 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인민의 삶을 기준으로 할 때 그들은 이명박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종종 ‘옳지만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건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권만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은 과연 사실일까?

민주화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중요한 변화들 가운데 집권을 통해 이루어진 것, 심지어 정치권 안에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 변화들은 모두 거리에서 인민들의 저항과 죽음을 무릅쓴 직접행동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난 25년은 이렇게 요약된다. ‘① 정치가 부자와 힘센 자들의 편에 설 뿐 노동자 인민의 삶을 대변하지 않는다. 극우독재 출신의 정치세력(A)이든 민주화운동 출신의 정치세력(B)이든 다르진 않다.’ ‘② 참다못한 인민들은 직접 행동한다. 정치의 무게중심은 정치권에서 거리로 넘어간다.’

가장 자연스러운 다음은 이걸 것이다. ‘③ 인민들의 직접행동은 새로운 진보정치로 승화한다.’ 만일 그랬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과 전혀 다를 것이다. 노동자 인민이 자신의 생존 문제를 (대의할 정치가 없어) 거리에서, 고공 크레인 위에서 외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공권력에 깨지고 언론에 철저히 외면당하며 죽기로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이랬다. ‘③ A의 집권은 막아야 하니 B에 힘을 모아야 한다. 독자적 진보정치는 비현실적이다.’

인민들의 저항은 언제나 결국 그 저항을 만들어낸 정치권에 동원되고 흡수되어 왔다. 그 25년의 결과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정치는 부자와 힘센 자들의 삶만 대변한다. 1970년 전태일과 같은 유서를 2003년에 김주익이 쓰고 죽어간 바로 그 85호 크레인 조종실에서 2011년 김진숙이 170여일째 사투를 벌인다. ‘A의 집권은 막아야 하니 B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한술 더 떠 ‘B의 집권이 진보집권이다’로 주장된다.

지난 4월 지방선거 직후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통과시켰다. 선거연합의 힘과 승리를 자찬하던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국회 바닥에 앉아 농성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그 우스꽝스런 에피소드는 집권강박에 의한 선거연합의 실체와 그 승리가 가져올 세상을 생생히 시뮬레이션하는 많은 사례 중 하나다. 우리는 25년 동안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온 집권강박을 떨쳐내야 한다.

집권강박을 떨쳐내는 건 집권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백년 천년 원칙과 교조만 되뇌면서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집권하자는 것이다. ‘그들의 집권’을 끝내고 ‘우리의 집권’을 시작하자는 말이다. 그러다 박근혜가 집권하면 책임질 거냐고? 그런 걱정을 빙자한 공갈 앞에 되묻는다. 민주당·국민참여당이 이명박 정권의 패악질을 막아내지 못하는 건 집권을 못해서인가, 이명박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인가?

중요한 건 A가 집권하는가 B가 집권하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의 삶을 반영하는 정치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리고 성장하는 것이다. 집권은 그 자연스러운 산물일 뿐이다. 우리의 정치가 존재하고 성장한다면 집권 전이라 해도, 박근혜가 아니라 그 아비 박정희가 돌아온다 해도 우리 삶을 지켜낼 수 있다. 우리는 집권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이 사회의 모든 중요한 변화들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왔다. 우리의 결핍은 단지 하나다. 우리가 정치의 주인임을, 우리가 세상의 주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래된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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