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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TV 맛집이 맛없는 이유 / 이원재

등록 2011-06-29 19:10수정 2013-05-16 16:40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트루맛쇼’를 강요하는 빅브러더는?
저널리즘 가치보다 이윤을 앞에 놓는
미디어기업의 경영 행태다
비 내리는 저녁, 극장 ‘스폰지하우스’를 찾아갔다. 화제의 영화 <트루맛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알게 됐다. 왜 티브이에 나오는 맛집은 맛이 없는지를.

영화는 대한민국 텔레비전의 맛집 프로그램이 어떻게 제작되는지를 파헤친다. 식당 주인은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고, 브로커는 가짜 메뉴를 만들고, 연기자 지망생인 가짜 손님들은 맛없는 가짜 음식을 먹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는 연기에 열중한다. 결국 자신이 문을 연 식당을, 1000만원을 들여 에스비에스 <생방송 투데이>에 맛집으로 등장시킨다. 전직 문화방송 피디인 김재환 감독은 이 모두를 몰래카메라에 담았다.

티브이 맛집 방송은 왜 거대한 사기극이 됐을까? 외주제작사에 저가로 프로그램을 발주하고는 책임은 나 몰라라 하는 거대 방송사에 큰 책임이 있지만, 그들만 비난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도 아니다. 모두는 거대한 사슬 속에 있다.

광고시장은 줄어들어 프로그램 제작비용 절감 압력이 더욱 거세진다. 비용 절감을 위해 방송사는 핵심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외주를 선호한다. 그렇지 않아도 경영사정이 열악한 외주제작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빠듯한 일정으로 제작을 마쳐야 하니 약간의 조작은 불가피하다. 브로커를 통해 식당을 섭외하고, 연기자 지망생을 앉혀야 한다. 손님 대사까지 써줘야 한다.

원청업체(방송사)의 시청률 압박도 거세다. 먹을 수 없더라도 ‘화끈한’ 가짜 음식으로 눈길을 끌어야 한다. 조금만 프로그램 질을 높이려 해도, 추가 수입을 확보해야 한다. 출연하는 식당들로부터 소액의 협찬을 받는 것쯤이야 프로그램 질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처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이윤 극대화의 압박과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무감각 속에 사기극은 시작되고 완성된다. 문제는 맛집 방송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점점 영향력이 커지는 거대 광고주들은, ‘소액의 협찬’만으로도 기업의 이해관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프로그램들을 손 하나 까딱 않고 확보하게 될 것이다. 예능에서도 시사에서도 교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트루맛쇼’를 강요하는 빅브러더는 누구인가? 저널리즘 가치보다 기업의 생존과 이윤창출을 앞에 놓는 미디어기업의 경영 행태다. 특히 민영방송인 종합편성채널 출범을 앞두고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그래서 미디어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미디어기업은 ‘저널리즘의 공적 가치’라는 사회적 책임이 기업으로서의 경제적 책임보다 앞서야 하는 조직이니, 여기 걸맞은 경영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회책임경영 보고 지표를 만드는 지아르아이(GRI·글로벌 리포팅 이니셔티브)에서는, 주요 광고주 매출 비중까지도 언급하는 등 엄격한 미디어기업 사회책임경영 지표 초안을 만들어놓고 작업중이다. 외주제작사 등 협력업체 관계, 편집과 영업의 분리 등도 경영의 주요 이슈다. 사회책임경영 보고서를 발간해 이런 내용 모두를 낱낱이 대중에게 공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실 시청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어느 문제에서나, 사슬의 맨 끝에는 소비자가 있기 마련이다. 시청자는 가해자이면서 곧 피해자다. 협찬에 의존한 감각적 콘텐츠만 찾지 말고,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에 나서야 한다. 좋은 세상을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점심 한 끼 값인 <트루맛쇼> 표를 사서 그 승부에 힘을 싣자. 광고주에 휘둘리지 않는 미디어를 원한다면 지갑을 열어야 한다. 소비는 투표다. 어쩌면 대선보다 더 중요한 투표다. 희망은 당신의 지갑 언저리에서 맴돈다.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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