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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따먹 춘향뎐’ / 김종구

등록 2011-06-29 19:18

판소리 춘향전 가운데 가장 비장한 장면 중의 하나는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했다가 형틀에 묶여 곤장을 맞는 대목이다. “일조낭군 이별 후에 일부종사 허라는데 일편단심 먹은 마음 일시일각 변하리까….” 춘향은 매 열 대를 맞을 때까지 그 맷수에 운율을 맞추어 자신의 절개와 지조를 절절이 엮어 나간 뒤 삼십 대째에 그만 기절해버린다.

영조 시대 양반 출신으로 판소리를 배웠다가 가문을 더럽힌 죄로 죽음으로 내몰린 권삼득이 “죽기 전에 소리 한마디 하고 죽겠다”고 간청해 부른 것도 이 십장가(十杖歌)라고 한다. 그 애달픈 소리에 감동을 받은 문중 사람들은 그를 족보에서 제명해 내쫓는 것으로 끝냈으며, 권삼득은 그 뒤 각고탁마해 득음(得音)의 경지에 올라 초대 명창으로 불리게 된다.

춘향전에는 비장한 대목도 있지만 그보다는 곳곳에 해학과 유머가 넘쳐난다. 이몽룡이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깐 보고 돌아가 책을 마주하고 앉았는데 춘향이 생각에 계속 글을 엉뚱하게 읽는 장면도 그렇다. 정정렬(丁貞烈) 판 춘향전에는 “원앙금침 잘 숙(宿), 절대가인 좋은 풍류, 만반진수 벌 렬(列)” 식으로 다소 점잖게 돼 있지만 신재효가 정리한 판은 좀더 노골적이다. “하도낙서(河圖洛書) 잠간 보니, 일월성신 별 진(辰), 원앙금침 펼쳐놓고 훨훨 벗고 잘 숙(宿), 양각(兩脚) 번뜻 추켜 드니 사양 말고 벌일 열(列), 둥뚱덩 입맞추니 온갖 정담 베풀 장(張)….” 외설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결코 상스럽지 않다. 한문으로 된 유식한 문자를 희롱해 뒤집어엎음으로써 박장대소를 이끌어낸다.

김문수 경기지사의 ‘따먹론’이 장안의 화제다. 춘향전의 주제와 의미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내놓은 것까지는 좋은데 판소리에 걸맞은 해학은커녕 오히려 듣는 이의 불쾌감만 자극했으니 딱한 노릇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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