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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검열들 / 고건혁

등록 2011-07-06 19:04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이전 시대 검열의 이란성 쌍둥이,
‘청소년 보호’와‘소셜테이너 규제’
1990년대 중반 십대를 보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서울 홍익대 인근의 지하실들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최초의 인디 음악인들이 등장했다. 공중파 같은 주류의 미디어에서는 접해볼 수 없는 새로운, 더 나아가 불온하기까지 한 정서를 담은 이 음악들은 감수성이 한창 물렁할 때의 어린아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덕분에 나는 뭘 만드는 것의 재미를 알게 되었고 평생 갖고 놀 거리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행운은 아마 음반 사전심의 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음반을 제작하기에 앞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자는 처벌한다’는 법률이 살아 숨쉬던 때, ‘가사가 치졸하다’ 혹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심의가 반려되던 상황에서 하물며 내가 듣던 종류의, 아예 직접적으로 불온한 노래들이야 오죽했겠는가. 만약 정태춘 선생이 이러한 법률에 대해 위헌심판 제청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결과 1996년에 사전심의 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음악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고 한국 대중음악은 훨씬 우중충한 게 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선배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가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좀더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예전 시대의 망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도덕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었던 이전 시대의 검열은 이란성 쌍둥이를 남겼다. 도덕의 피를 물려받은 검열이 바로 ‘청소년 보호’. 검열을 주관하는 여성가족부는 가사 중 유해 약물인 술이 등장하는 노래를 그 맥락과 상관없이 문제 삼는다. 그 결과 ‘가끔 술 한잔에 그대 모습 비춰볼게요’라는 가사의 노래는 청소년 유해 매체가 된다. 폭력성에 대한 기준 역시 표현의 흔적만 있어도 무조건 유해 매체로 판정해, 영화나 방송 등의 다른 매체들과 형평성이 맞지 않을 정도로 남발되고 있다.

한편 정치의 피를 물려받은 것은 최근 <문화방송>(MBC)이 발표한 새 심의규정, 이른바 ‘소셜테이너 출연금지법’이다.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힌 이에게 고정 출연을 금지시키는 이 검열은 비록 ‘언론의 공정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 우위에 있는 사상만이 살아남게 하려는 목적으로 정치적인 표현을 금지하는 고래의 검열 논리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최근 배우 김여진씨의 문화방송 라디오 섭외를 두고 벌어진 징계 논란을 보면 이러한 규정이 목표로 삼은 것이 특정한 정치적 입장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서울대 법인화 반대 공연에 참가한 우리 회사 소속 음악인 역시 이러한 규정대로라면 출연이 불가능할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경우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 혹은 언론의 공정성 등의 가치가 충돌한다고 했을 때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면 깊은 생각을 거친 후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위의 두 검열은 너무 넘친다. 술이 정말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이뤄져야 할 유해약물 판정은 술의 등장 자체만으로 문제가 되고,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에서 이뤄져야 할 출연 금지는 임원진이 일선 현장의 섭외 권한까지 개입해가며 아예 원천봉쇄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필요한 것은 검열과 금지가 아니라 발견과 추천이다. 가장 무시무시한 검열인 ‘자본의 논리’로 인해 봉쇄된 음악과 정치적 입장들, 그리고 기타 등등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야말로 말초적인 자극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 정말 객관적인 정치적 상황을 시청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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