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반의약품(OTC)을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오는 9월 정기국회에 내기로 했다. 박카스 등은 당장 이달 말부터 ‘의약외품’이라는 이름으로 슈퍼마켓에서 판매된다.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 없는 약품의 판매규제 완화를 둘러싼 이해당자 간 지루한 공방이 일단락된 셈이다. 정부 안에선 경제부처가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를 제압한 모습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3월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와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의약품 판매규제를 완화하면 제약회사 매출이 늘어나고 투자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그래서 일자리도 늘어나고 국부 창출에 기여한다.” 그는 이처럼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정책을 이익집단의 반발에 부닥쳐 시행하지 못하는 현실을 늘 안타까워했다. 의료서비스의 산업화 정책이 진전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의 주장은 경제논리로도 맞지 않는다. 의약품 판로가 확장되면 국내 제약산업과 나아가 전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이뤄질 수 없는 가정’을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시장이 외부와 차단되어 있거나 제약회사의 이익이 고스란히 국민소득으로 이전되지 않는 한 의약품의 공급과 수요는 맞아떨어질 수 없다. 또 모든 국민이 죽지 않을 만큼 적당하게, 꾸준히 계속 아파야 한다. 이 경우에는 경제적 편익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진다.
프랑스 경제학자 장바티스트 세(1767~1832년)는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케인스는 세의 주장을 두고,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때만 통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의견’이라고 공격한 바 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아직 세의 그늘이 짙은 것 같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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