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승리의 벅찬 감동을 예감한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이며 제도정치 제도언론에 대한 기대를 접고 우리 정치 우리 언론을 모색하자’는 말에 비현실적이라 미간 찌푸리던 사람들이 ‘정치도 공권력도 언론도 자본의 하수인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아침. 부산발 혁명.” 서울시청 광장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1만여명의 참여자들이 김진숙씨를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모여든 다음날 아침, 트위터에 쓴 글이다. 김진숙(@jinsuk_85)씨는 이 글을 리트위트하며 덧붙였다. “희망버스 혁명!”
혁명. 체제 안에서의 변화나 개혁이 아니라 체제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뜻하는 말. 우리는 이 말을 폐기한 지 오래다. 수사적 표현으로서 혁명이라는 말은 상업광고에서조차 쓰이지만, 그 사실은 이젠 누구도 혁명이라는 말을 본디 의미로는 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혁명이라는 말이 오갈까? 희망버스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좀더 근본적인 곳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명의 육체에 새겨진 이틀의 체험이 그것을 더욱 또렷하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오늘 한국을 지배하는 건 이명박도, 이명박의 미래로서 박근혜도 아닌 자본이라는 것. 조남호와 정몽구와 이건희 같은 자본가들이 한국의 진짜 지배자이며 정치와 공권력과 제도언론은 단지 그들의 도구이자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3년 전 한국에선 촛불행진이라 불리는 거대한 시민의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촛불행진은 이명박이라는 악덕한 대통령에 대한 분노에 몰두함으로써 결국 모든 걸 이명박 탓으로 돌린 개혁정치 세력이 그 열매를 차지하고 말았다. 그러나 희망버스는 김진숙이 188일째 싸우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싸우던 김주익이 129일째 되던 날 목을 맨 건 바로 그 개혁정권에서였다는 것, 개혁적 공권력과 개혁적 언론에서였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그들 역시 자본의 또다른 도구이자 하수인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희망버스는 오늘 난무하는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희망버스는 우리에게 제도정치에 대한 자기최면적 기대를 접고 자본을 견제하는 우리의 자치적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소통하고 연대하고 희망버스를 타고 싸우면서. ‘세상을 바꾸는 정권교체’는 그 힘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정치,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의 편에 서는 정치, 이윤이 아니라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정치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시작된다.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간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희망버스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역시 질문한다. 김진숙의 싸움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었다. 김주익이 개혁정권에서도 실패한 싸움을 이명박 정권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김진숙은 김주익이 죽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현실적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김진숙의 비현실적인 선택을 지지하는 희망버스도 마찬가지다. 만명의 참여자는 김진숙을 무사히 내려오게 하지도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만명 가운데 누구도 희망버스가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승리의 벅찬 감동을 예감한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에서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선택과 행동이 모이고 쌓여 모든 비현실적인 것들을 현실로 바꿔낸다. 거대한 물살처럼 체제의 둑을 무너뜨린다. 역사는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혁명중이다. 부산발 혁명, 희망버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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