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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아세안지역포럼에서 생긴 일과 생길 일 / 강태호

등록 2011-07-17 19:09수정 2013-05-16 16:40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한반도정세의 분수령이던 ARF
이명박 집권 뒤 대결의 장으로
북 따돌리려다 되레 발목잡혀
아세안지역포럼(ARF)은 중요한 외교무대이다. 북-미 관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에서 특히 그렇다. 그 회의가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0년 7월 북한은 방콕 아세안지역포럼에서 23번째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그건 50년 넘게 지속돼온 북한과 주변국들의 낡은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역사상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남북, 북-미, 북-일 외무장관회담이 한꺼번에 열렸기 때문이다. 7월26일 사상 처음으로 회담한 남북의 외무장관들은 “대외관계와 국제무대에서 상호 협조해 나가기로 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은 훗날 2000년 10월 자신의 역사적인 첫 평양방문을 초청받은 건 바로 이 방콕 외무장관회담에서였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때 북한 최고위급(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유엔총회 참석 형식을 빌려 미국으로 초청했다. 북·일도 이 첫 외무장관회담에서 수교교섭 협상 재개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또한 2년 뒤인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첫 방북을 공식화한 것도 그 두달 전 브루나이 아세안지역포럼에서의 두나라 외무장관회담 자리였다.

이처럼 아세안지역포럼은 북한과 미국, 일본의 외교수장들이 만나는 게 허용된 무대였으며, 서로 속 깊은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로 활용했다. 공식 회담이 부담스러울 땐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본 것처럼 만나는 이른바 ‘커피회담’ 같은 다양한 방식이 동원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아세안지역포럼은 한반도 정세 전환의 분수령이기도 했으며, 정세를 가늠하는 풍향계가 됐다. 물론 앞서의 큰 변화는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난 3년 아세안지역포럼은 오히려 대결의 장이었다. 2008년엔 직전에 있었던 금강산 관광객 총격사망 사건이, 2009년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제재 결의가, 지난해엔 천안함 후속조처를 둘러싼 날선 대립으로 외교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미국은 이미 대북 식량지원 재개를 지렛대 삼아 천안함과 6자회담의 분리를 분명히 했다. 지난 5월부터는 공개적으로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왔다. 게다가 클린턴 행정부 말기 앞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을 수행하며 대북 포용정책을 주도한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 조정관을 국무부 3인자 자리인 정무차관에 발탁했다. 이제 정책 기조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남북대화가 선행돼야 한다지만 아세안지역포럼은 그런 형식과 조건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자리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당혹스러워졌다. 지난 6월 말 김성한 외교장관의 발언은 그런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발리 아세안지역포럼에서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만나자고 하면 안 만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생뚱맞게 보이지만 이 말은 박 외무상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접촉하든 우연히 만나든 어떤 형태가 됐든 남쪽을 따돌리는 것만은 막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하더라도 대규모로 한꺼번에 하지 말고 조금씩 단계적으로 해서 한국 정부의 체면을 살려달라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뒤인 7월1일 이명박 대통령은 민주평통 출범식에서 천안함·연평도로 조성된 불안한 정세에 더이상 머물 수 없다고 했다. 정작 북한을 고립시키려다 스스로 발목이 잡힌 5·24조처는 어쩌려는가. 언제까지 엉거주춤 남의 뒷다리 붙잡고 있으려는지.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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