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 경제부 기자
파워블로거한테 ‘파워’를 주는
누리꾼들도 신중해져야 한다
누리꾼들도 신중해져야 한다
4년 전 이맘때쯤 일하고 있던 주말섹션 ‘esc’ 팀에서 기사 때문에 난리가 났다. 주로 정보와 재미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주말섹션의 특성상 기사에 대한 논란이나 항의는 없다시피 한데 ‘맛집 블로거’에 관한 기사가 문제를 일으켰다.(▷ 블로그는 어떻게 식당을 파괴하는가 참조)
‘파워블로거’라는 칭호가 만들어지기 전이라 담당기자는 ‘스타블로거’라는 단어를 써서 권력화된 맛집 블로거를 비판했다. 개인 모임을 가지기 위해 레스토랑에 무리한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특별대우’가 충분하지 못할 때 블로그에서 그 식당을 ‘조져’ 영업을 어렵게 만드는 사례 등이 등장했다. 기사를 쓴 기자의 이메일은 초토화됐고, 기자는 며칠 동안 항의전화를 받느라 업무를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최근 파워블로거의 상업화 논란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불과 3~4년 만에 파워블로거가 영업이익 수십억원 규모의 ‘1인 기업’이 될 줄 모르고 고작 밥 한끼 공짜로 먹겠다고 달려들던 초기 인기블로거들의 순진함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에피소드는 귀여운 해프닝이었다.
일부 파워블로거들이 공동구매를 기획하면서 중개비 조로 돈을 번다는 이야기는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처럼 오가던 사실이었다. 누가 봐도 지나치다 싶을 만큼 ‘보도자료’성 제품 사용 후기가 올라오니 빤한 장삿속이라는 걸 인지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 가리고 아웅’식의 운영은 공동구매자들의 반응 댓글에도 드러났다. 지난가을 요리·살림 관련 파워블로그에서 전통한과를 구입했던 한 주부는 도무지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고 맛이 없어 구매 후기로 올렸다가 ‘보관을 잘못해서 그렇다’ ‘입맛이 유별나신가 보다’ 하는 공격성 댓글에 치여 슬그머니 자신의 후기를 삭제했다고 한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큰 이권이 오가는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아이들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고 자투리 천으로 집안을 장식하며 재래시장에서 싸게 파는 제철채소로만 음식을 해먹는 살뜰하고 순박한 주부로 자리매김했던 파워블로거 자신일 거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이 블로거들을 지지하면서 얄팍한 제품 칭찬에 꿈틀대는 장사치의 속내에 무신경했던 누리꾼들도 온전히 피해자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살균기의 공동구매를 주도했던 ‘베비로즈’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지만 베비로즈와 함께 양대 요리 블로거로 꼽히던 한 파워블로거는 엊그제부터 활동을 재개했다. 하루에도 십여개씩 떠 있던 공동구매 코너는 사라졌다. 댓글 역시 수천개가 달리던 전에 비하면 턱없이 줄었지만 여전히 수백개가 올라와 있다. 대부분 격려성 메시지다. 한 누리꾼이 다른 사이트에 와서 댓글을 차단당했다고 ‘고발’한 것을 보니 일부 비판적인 댓글은 삭제됐을 수도 있고 일부는 누리꾼들의 의심처럼 이른바 ‘댓글 알바’나 협력업체 직원들의 지원사격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댓글 전부가 목적성 지원사격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너그러이 용서하자는 생각일 수도, 무슨 큰 잘못을 했는가라는 반문도 할 것이다. 하지만 2주 동안 사회 전체를 들끓게 했던 블로거 중 한사람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포스팅을 시작하는 모습에는 ‘파워’ 약화를 근심하는 조급함이 느껴진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시녀’ 짓, 즉 파워블로거를 무조건 추종하는 행태는 그만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정이야 어쨌든 파워블로거에 ‘파워’를 준 것은 누리꾼들이다. 정보도 재미도 순식간에 상업화되는 세상에서 ‘배신당했다’고 뒷북치지 않으려면 누리꾼 스스로 파워를 선물하는 데 좀 신중해져야 한다. dmsgud@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경찰, 집회사진 채증해 수만명 ‘DB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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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야 어쨌든 파워블로거에 ‘파워’를 준 것은 누리꾼들이다. 정보도 재미도 순식간에 상업화되는 세상에서 ‘배신당했다’고 뒷북치지 않으려면 누리꾼 스스로 파워를 선물하는 데 좀 신중해져야 한다. dmsgud@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경찰, 집회사진 채증해 수만명 ‘DB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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