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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뒤죽박죽 물가잡기 / 홍대선

등록 2011-07-24 19:24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근본 처방 없이는 요요효과나
제로섬게임에 놀아날 걸 모르나
가격 규제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반짝효과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유신정권은 1975년 ‘물가안정법’이란 걸 만들었다. 쌀·보리쌀·연탄·비료 가격의 통제뿐만 아니라 서비스 요금까지 규제하는 강력한 물가단속법이었다. 그랬는데도 1·2차 석유파동을 겪은 70년대 평균 물가상승률은 두자릿수였다.

당시 정부도 물가를 성장의 희생양으로 삼았다가 탈이 나자 행정력을 동원한 물가압박 대책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두른 칼날에 성장과 물가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었다.

엠비(MB)정부의 물가잡기 행태는 공교롭게도 그때와 닮은꼴이다. 묘안을 찾느라 머리를 쥐어짜온 한 공무원은 “뾰족수는 없지만 뭐라도 내놔야 하는 거 아니냐”며 심드렁하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지난주 청와대 물가대책회의에서는 실패작인 ‘엠비 물가’의 새 버전을 들고나왔다.

그날 회의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서민가계, 서민부담, 서민체감이었다고 한다. 벌이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가구는 전체 가구의 30%인 530만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900만명, 청년실업자는 120만명에 육박한다. 다들 물가고에 전세난, 빚갚기로 지쳐 있는 현실이다. 뛰는 물가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부·여당한테 민심이반 악재일 테지만, 실질소득 마이너스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겐 생계가 걸린 절박한 문제다.

26일 발표될 물가종합대책에는 또 뭐가 담길까. 대통령이 총대를 멘 사실상의 국가총동원령에 각 부처는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이미 물가단속기관으로 변신한 주요 부처는 더 강력한 단속 의지를 표명하거나 썩은 무라도 잘라서 내놓을 것이다. 앞서 지식경제부는 “기름값이 묘하다”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정유사를 눌렀건만, 기름값은 다시 툭 튀어나왔다. 장관 입에선 주유소 500곳의 장부를 들여다보겠다는 엄포가 나왔고, 업체들은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근본 처방 없이는 요요효과나 제로섬게임에 놀아난다는 걸 몰라서 그런 것일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질적으로 다양해졌음을 고려할 때 억누르기만으로 물가를 잡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정설이다.

물가상승 요인은 공급과 수요 측면 모두 살펴야 한다. 기름값과 곡물값의 상승은 외부 요인인데 모든 걸 엠비 탓으로 돌리니 정부로선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볼멘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렸고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과 맞물려 물가상승의 폭을 더 키우지 않았는가 말이다. 한국은행의 금리정책 실기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부추긴 것도 물가상승에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 한다. 지난 21일 당정회의에서 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저금리·고환율로 기업만 덕보고 서민들은 물가 피해를 봤다”고 정책 실패를 질타했다.

앞으로 물가는 안정될 요인보다는 악화될 요인이 많은 게 걱정이다. 전셋값과 농산물값이 다시 들썩이고 공공요금, 추석물가까지 줄줄이 대기 상태다. 하반기 물가가 심상찮은 상황에서 정부가 뒤늦게나마 심각성을 깨달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경제정책 방향도 조금 틀었다. 그런데도 급한 불을 끄는 데 정신 팔려서인지 물가안정과는 상충되는 대책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재건축 규제를 풀고 집을 여러채 가진 다주택자에 대해 중과세를 폐지하기로 한 방침 등이 그것이다. 자산가치의 상승을 부를 이런 대책은 부동산 거품을 키울 것이고, 물가를 자극할 것이다. 뒤죽박죽 정책으로 소리만 요란해서는 물가안정은 어림없다는 게 지금껏 경험한 교훈이다.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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