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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최태원과 조남호, 두 회장의 선택 / 이원재

등록 2011-07-31 19:29수정 2013-05-16 16:40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노동자와의 약속을 깬 조 회장
고객의 창고를 털린 최 회장
눈앞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요즘 여론의 도마에 오른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은 내심 억울할지도 모른다. 174억원의 주식 배당이 문제라고? 주주에게 배당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경영자는 주주의 대리인 아닌가. 배당과 동시에 벌어진 정리해고가 문제라고? 영도조선소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생산성 높은 외국으로 옮겨가는 것이 기업이 성장하는 길 아닌가. 왜 이런 선택을 놓고 시위를 벌이고 청문회를 열어 나오라고 하는가?

조 회장이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 사회는 평생고용 체제에 익숙해져 있었다. 기업과 사회 사이에는, 한번 취업한 사람은 웬만하면 정년 때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암묵적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1997년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뒤 상황은 급변했다. 한국인은 ‘정리해고’라는 낯선 용어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기업 경영이 어려울 때만’이라는 조건이었다. 새로운 약속이었다.

한진중공업은 그 약속을 깨뜨렸기 때문에 공분을 산 것이다. 연간 영업이익을 2000억원, 3000억원씩 내는 기업이 끝내 정리해고를 결정하는 것을 한국 사회는 이해하지 못한다. 주주에게는 배당을 하면서 해고를 한다는 사실도 이해하기 어렵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임직원이 희생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은 이런 논리를 잘 이해할 것 같은 경영자다. 최 회장은 최근 몇년 동안 에스케이는 ‘이해관계자 경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단기적 이윤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행복경영’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주주와 임직원과 소비자와 지역사회 등의 요구를 함께 고려해 균형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경영자의 책무라는 이론이다. 사회책임경영(CSR)으로 흔히 불리며, 최근 힘을 얻고 있는 경영 트렌드다.

그런 최태원 회장도 지금 위기 앞에 놓여 있다. 네이트와 싸이월드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야기다.

한국인 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번 일은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엄청난 사건이다. 고객의 물건을 대신 보관하는 사명을 지닌 창고지기가, 도둑에게 열쇠를 몽땅 잃어버린 셈이다. 이 창고에는 돈으로 환산조차 할 수 없는, 고객들의 기억과 지식과 관계가 들어 있다. 그 열쇠로 고객들의 다른 창고를 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태원 회장이 사회책임경영을 주창한 이래, 에스케이는 사실 많은 사회공헌활동을 펼쳤다. 이를 위해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며 거액을 출연해 행복나눔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책임경영은 사회공헌활동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핵심 사업인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불거진 가장 큰 도전이다.

최태원 회장과 조남호 회장은, 선대의 사업을 물려받은 경영자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기업의 책임에 대한 두 회장의 생각은 매우 다르다. 위기를 맞은 조 회장은 시종일관 해외 출장 중이다. 최 회장은 어떻게 대응할까?

위기는 늘 기회이기도 하다. 1982년 존슨앤드존슨은 타이레놀에 누군가 독극물을 주입한 사건이 일어나자, 거액을 들여 전국에 배포된 제품을 전량 리콜하고 독극물 주입이 불가능한 제품을 새로 개발해 내놓았다. 기업의 운명을 건 그 승부로, 존슨앤드존슨은 가장 존경받으면서도 성공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최태원 회장은 이만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내놓을 수 있을까? ‘사회책임경영이란 이런 것’이라는 본보기를 대한민국에 보여줄 수 있을까?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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