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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누구든 살아있으라 / 김진철

등록 2011-08-02 19:09

김진철 esc팀장
김진철 esc팀장
성공한 다음에 자살을 결행한다는
<표백>을 읽으며 그 죽음을 떠올렸다
17년 전 이맘때였다. 이른 새벽 승합차에 실려 춘천을 향했다. 어스름녘 옅은 안개 피어나는 북한강변에 내렸다. 거기, 산이 있었다. 동틀 무렵 흐린 새벽, 고교 동창들과 산을 탔다. 해발 600여m 적당한 산이었으나 등산로를 벗어나 걷는 길은 고달팠다. 길이 없는 길에 발을 빠뜨려 가며 걸었다. 그늘 속 꽃 피우지 않는 양치식물을, 불길한 검은 흙을 얼마나 밟아 누르며 갔을까. 거기 커다란 나무 옆에 비닐에 싸인 물체가 놓여 있었다. 갓 스물 넘긴 우리들의 친구였다.

무더위가 끈적한 열대야로 이어질 즈음이었을 것이다. 고교 졸업 뒤 각자도생하느라 연락 없던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가 죽었다.” 시장 어귀 가난한 그의 집에는 영정 사진 하나 놓여 있질 않았다. 친구의 주검을 발견한 경찰은 그의 소지품에서 신분증을 확인해 연락해 왔다고 했다. 혼절한 부모를 두고 우리들이 새벽차를 타고 그를 찾으러 갔던 터다.

혼 떠난 육신을 들것에 싣고 흩뿌리는 비에 젖어 하산했다. 이 험한, 길 없는 길을 어떻게 헤매며 올라갔을까. 죽음을 결심하고 산길을 떠돌 때 심정은 어땠을까. 어떤 절망이, 어떤 어두운 좌절이 그를 이 길 없는 길로 이끌었을까. 그의 자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한총련 대학생 자살…집안 반대로 고민.’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은 한 우주의 사멸을 설명하지 못했다.

장강명의 소설 <표백>을 읽으며 스물 즈음 그때를 떠올렸다. 세상을 향한 마지막 무기로 제 목숨을 내던지는 청춘들이, 아프고 섬뜩하게 풍자돼 있다. 과연 ‘완벽한 세상’에서 할 일을 원초적으로 빼앗긴 청춘들은 제 몸을 지켜낼 방패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하다. 절망의 나락에서 죽음을 통해, 파국으로 승리를 일궈내겠다는 허무맹랑한 계획 말이다. 슬프게도 그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자유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유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자살이 철저히 기획되는 대목에서 기가 막혔다. 무엇이든 성취한 뒤 목숨을 끊으라는 지침이 제시된다. 자살의 의미를 축소하고 왜곡하려 드는 불순한 의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젊은 자살 동조자들은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따고 나서,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뒤, 대기업 후계자로 낙점된 재벌 3세가 유학생활 중에, 자살을 결행한다. 세속적 성공을 일군 그들의 자살에 우울증이나 신병 비관, 파산, 불화 따위의 딱지는 붙일 수 없을 테니까.

‘한총련 대학생이 집안 반대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식의 간편한 설명에 모욕감을 느꼈었다. 93학번 그가 극렬 운동권이었다 해도 ‘집안 반대’가 제 목숨을 스스로 끊게 할 만큼, 그 검고 깊은 산속을 두려움에 떨며 절망 속에 헤매게 할 만큼, 거대한 무엇이었겠는가. 인간을 가볍게 보는 사회는 인간의 죽음 역시 하찮게 여긴다는 절망감을 떨칠 수 없었다.

<표백>을 읽는 내내 쓸쓸했다. 청춘의 자살 선언문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뭔가. 17년 전, 길 없는 길을 헤매는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었겠는가. 소설은 자살선언을 소박하게 반박한다.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지금 여기의 청춘들은 ‘인정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소한 삶조차 획득하지 못하는 극한의 절망 끝에 빠져 있다는 데 비극이 있다. 그래서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외침이 더 와닿는다. ‘… 누가 떠나든 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턱턱, 짧은 숨 쉬며 내부의 아득한 시간의 숨 신뢰하면서/ 천국을 믿으면서 혹은 의심하면서 도시, 그 변증의 여름을 벗어나면서.’(<비가2-붉은 달> 중)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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