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사할린 천연가스가 북을 경유해
남한에 오는 방안이 현실화한다
새 남-북-러 협력구도를 기대한다
남한에 오는 방안이 현실화한다
새 남-북-러 협력구도를 기대한다
“북한 협상가들은 내가 상대했던 사람들 중 최고이자 가장 다루기 힘든 협상가들 가운데 듭니다.”
부시 미국 행정부 1기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의 말이다. 그는 2009년 7월 <시엔엔>(CNN)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했다. 킹이 물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겁니까?” 파월은 이렇게 답했다. “그들은 이상한 체제에 살고 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라거나 혹은 정권이 미쳤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말하려는 건 그들의 협상입니다. 그들의 협상은 미친 것이 아닙니다.”
파월의 말을 다시 꺼낸 건 북이 지금 ‘협상’을 얘기하는 것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미국 방문 때문이다. 아마 오바마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북·미는 진지한 협상의 길로 들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그건 북한과 미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북은 8월 들어 얼마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삭제해서 내보내기 시작했다. 중요한 변화다. 북이 이 대통령을 ‘역도’로 규정한 것은 ‘남조선 당국이 반북 대결로 얻을 것은 파멸뿐이다’라는 <로동신문>의 논평에서부터였다. 취임 두달도 채 안 된 2008년 4월1일이었다. 그 뒤 역도라는 말은 북이 이 대통령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이 정부에서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남북 협상을 예고하고 있다. 그건 이 대통령이 12일 통일고문회의를 주재하며 한 말에서도 감지된다. “남북이 어렵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이 아니”며 “어쩌면 좋을 때보다도 어려울 때 길을 열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북이 4월의 베이징 남북 ‘비밀접촉’을 폭로한 6월 초만 해도 전문가들은 이 정부에서 남북대화는 물건너갔다고 봤다. 반면에 6자회담 재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그렇기에 7월 하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의 남북 외무장관 접촉은 6자회담으로 가는 3단계 과정의 통과절차로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남북은 어떻게 길을 열려고 하는 것인가?
지금 블라디보스토크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9월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푸틴은 이때 사할린~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1300여㎞의 가스파이프라인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 사할린 천연가스를 북을 경유해 남에 공급하는 방안은 90년대 초반부터 북핵 해법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 차원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업을 2008년 9월 이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 양해각서로까지 진전시켰던 것이다. 그것이 이번 준공식을 계기로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7월엔 러시아 가스프롬 쪽이 북한을 방문했고, 8월 초엔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된 게 8월8일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모스크바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회담 뒤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논의가 3국 가스당국 간에 진행돼 왔음을 공식 확인했다. 라브로프에 따르면 이들 3자 간에 구체적인 합의를 거치면 3국 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사업의 본격적인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장관도 긍정적이었다. 그는 “러시아의 노력을 평가하고 앞으로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9월의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은 시베리아로 가는 남·북·러의 협력구도를 만들어가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남이 배제된 채 진행된 창지투(창춘·지린·투먼)와 나진·선봉 간의 북-중 협력구도와는 달리 기대를 해봄직하다.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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