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금은 한때 수익성이 떨어져 처분 자산 1위로 전락한 애물단지 신세였다. 유럽 각국의 중앙은행은 1990년대 이후 재정적자 해소 등을 위해 금을 대거 팔아치웠다. 금 가격은 2차 오일쇼크 직후인 1980년 온스당 800달러대까지 급등했다가 폭락했으며, 이후 20년간 바닥을 기다가 1999년 250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만약 8000t이 넘는 세계 최대 금 보유국 미국이 금 매각에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누리면서 미 연준의 금 매각은 아직 한번도 실행되지 않았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일각에서 켄터키주 포트녹스에 보관된 정부 보유 금을 팔아 부채를 청산하는 데 쓰자는 주장이 슬금슬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미국이 금을 내다팔면 가격 폭락을 넘어 세계경제는 일대 혼란에 휩싸일지 모른다. 더블딥 공포에 휩싸인 미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달러를 찍어 펑펑 써오다 빚더미에 발목이 잡힌 처지다. 당장은 현실성이 떨어질지라도, 미국의 금 매각 논란은 변동성이 강한 금의 속성을 새삼 일깨우는 사례라고 하겠다.
금 가격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널려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미디어 기고에서 “황금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단기 추세에서 금 가격을 추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글로벌 금리에 따라 금값은 폭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금값 붕괴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세계 경기 하강과 달러 위기 속에 금값이 당분간 상승 패턴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보이는 게 현실이다. 금값이 온스당 2000달러를 뚫고 3000달러, 심지어 5000달러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난무할 정도이니 너도나도 금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금이 화려하게 등장한 배경은 다양하다. 먼저 수급 문제다. 공급은 제한되어 있는데, 신흥국의 고성장으로 금 수요는 늘어났다. 다양한 금 관련 금융상품의 개발은 투자 수요를 일으켰다. 최근 들어 가장 큰 원인으로는 달러 중심의 신용화폐 체제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금을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여기는 경향이 커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금이 화폐가 아닌 상품일 뿐이라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금본위제 아래서 금은 화폐로서의 지위를 누렸지만, 지금은 금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자 수익을 얻거나 무슨 배당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궁극적인 안전자산도 아니다. 달러를 대신할 안전자산이라면, 굳이 금 말고도 여럿 있기 때문이다. 금 열풍은 일반 자산의 거품 생성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시각이다. 미국에서 불과 수년 전까지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품의 투기적 속성에 기댄 금값의 고공행진은 위험 정도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조차 “금값 상승은 쉽게 붕괴될 수 있는 거품”이라고 주장한다.
1849년 미국 캘리포니아는 골드러시로 몸살을 앓았다. 일확천금의 꿈을 품고 미 전역에서 서부로 몰려들었지만, 금을 캐 욕망을 채운 이들은 극히 소수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온 나라에 금을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밭은 갈지도 않은 채 버려지고 집은 짓다 말고 방치돼 모든 게 정지한 듯 보인다. 우리는 출판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캘리포니아>지는 당시 금 광풍에 휩싸인 세태를 이렇게 전했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금이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면서 다시 부는 골드러시 바람은 또 어떤 기록을 남길까. 역사적 경험으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을 찾아 부자가 된 이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 신기루만 좇다 말았다.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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