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짜내는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다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짜내는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다
학력차별금지법이 논란이다. 한편에서는 사람이 학력 때문에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이 법을 지지한다. 다른 편에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학력도 높기 마련이라는 전제 아래 법으로 학력차별을 금지하는 방침에 반대한다. 나는 이런 윤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이 법안을 지지한다.
유학 시절 이야기다. 내가 속했던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경영대학원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는 대부분의 수업을 팀별 프로젝트 수행 형식으로 진행했다. 팀 동료에 따라 성적과 졸업 여부가 좌우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팀원을 내가 고르는 게 아니었다. 입학하자마자 학교에서 강제로 배정해 줬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은 모든 프로젝트를 그 팀과만 해야 했다.
팀원들은 정말 다양한 경력과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매트는 미국 해군 출신의 미식축구광이었고, 당연히 보수적이었다. 반면 기자와 하원의원 보좌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진보적인 하버드대 졸업생도 있었다. 스페인 소수민족인 바스크 지방 출신이고 여전히 독립을 지지하는 친구도 있었다. 강제로 짝을 지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만나보기도 힘들었을 친구들이었다.
사실 학교 쪽에서는 일부러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같은 팀에 배치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업에서 필요한 경영 기술을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학교 쪽 생각이 옳았다. 결국 나의 팀 동료들은 학업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로부터 엄청난 것들을 배웠다.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득하고, 다양성에 맞닥뜨리기를 주저하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졸업 뒤에는 국적과 경력과 가치를 초월한 국제 네트워크가 됐다.
엠비에이는 경영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다. 이런 교육에서 다양성을 강조한 것은, 그것이 바로 생산성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장은 다양한 사람과 문제로 채워져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점점 복잡해진다. 좋은 대학 나왔다고, 시험 성적 좋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배경의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부딪치며 머리를 짜내야 한다. 다양성에서 혁신이 나오고, 여기서 생산성도 나온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서울 강남 출신에 영어유치원과 외고·과학고와 명문대 학부를 졸업하고 외국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거친, 화려하지만 획일적인 인재들이 정부, 기업, 학계 등 어디서나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모습이 떠올라서다. 우리 사회 경쟁력을 심각하게 깎아내릴 것이다. 그 획일성 때문이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채용 자체가 다양성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처음에 개별 기업이 관행에서 탈피해 다양성을 실험하기는 어렵다. 그 사람이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탓이다.
이런 두려움을 걷어내주기 위해서라도, 학력차별금지법은 꼭 필요하다. 다양한 인재를 채용하고 싶어하는 기업이, ‘남들은 이렇게 안 하는데…’ 하는 자기변명을 걷어내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법이 된다는 이야기다.
학력만 이슈인 것은 아니다. 성별, 나이, 인종 등 모든 영역에서 다양성이 필요하다. 미국 미시간대학 스콧 페이지 교수는 <다름: 다양성은 어떻게 더 나은 집단, 기업, 학교, 사회를 창조하는가>라는 책에서 직원의 배경이 다양한 기업이 더 혁신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올바르기 위해서뿐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서도 인재 채용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학력차별금지법은 그 첫걸음이다.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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