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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진보 재판관 막는 보수정권 / 김종철

등록 2011-08-30 19:21

김종철 정치부 선임기자
김종철 정치부 선임기자
그의 ‘국가관’보다 진보적인 성향과
탁월한 법률 역량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조용환 헌법재판관 임명 동의안 처리가 또 미뤄질 것이 확실하다. 한나라당이 지난 6월에 이어 오늘 끝나는 8월 국회에서도 인사청문특위의 청문회보고서 채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청문회보고서를 채택해야 본회의에서 찬반 표결을 할 수 있는데, 한나라당이 보고서 채택 단계에서부터 막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7월 초 조대현 재판관이 퇴임한 뒤 두달 가까이 후임자 없이 재판관 9명 중 8명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헌법 해석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재판관 공석이 장기화되는 것은 사안이 심각하다. 중요한 사안의 결정을 미뤄야 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1표가 없음으로 인해 위헌이 될 수 있는 게 합헌이 되거나 그 반대의 결론이 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의 고의적인 거부는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헌정 방해행위다.

한나라당은 조 후보자가 적임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대고 있다. 근거로 두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위장전입이며, 다른 하나는 조 후보자의 이른바 국가관 또는 안보관 문제다. 위장전입은 두말할 것 없이 잘못된 것이다. 투기 목적이 아니고 조 후보자가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의 집을 짓거나 자녀들의 다니고 있는 학교를 옮기지 않기 위해서 주민등록을 허위로 옮겼다고 하지만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다. 법률 위의 법률인 헌법을 해석하는 헌법재판관에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상하게도 위장전입 부분은 문제 삼고 있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이 정부의 많은 고위공직자들이 위장전입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 이유만으로 낙마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대신 한나라당은 6월 청문회 때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조 후보자가 “정부 발표를 신뢰하나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고 답한 것을 문제 삼는다. “북한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판단하더라도 ‘확신’하지 못하면 국가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법률가로서 ‘확신’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겠다는 게 왜 국가관 부족으로 연결되는지 짧은 소견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신중함과 엄격함이 돋보이는 진정한 법률가다운 답변이 아니었던가.

수준 낮은 국회의원 몇몇이나 보수언론의 색깔론 공세에 공당이 덩달아 춤추고 있는 실제 이유는 딴 데 있는 것 같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조 후보자의 ‘국가관’이 아니라 진보적인 성향과 탁월한 법률 역량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조 후보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주요 인물로 국가 폭력 문제나 소수자 인권보호 등에 앞장서왔다. 합리적이면서도 탄탄한 법 이론을 갖춘 그가 재판관이 될 경우 주요 헌법 논쟁 사안에서 밀릴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보수진영에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헌법재판소 구성 원리나 운영원칙에 어긋나는 반헌법적, 반민주적 행위다. 헌법 해석의 최종 권한을 가지는 헌재는 재판관 구성부터 국민의 뜻을 가능한 한 다양하게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9명의 재판관을 국회와 대통령,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나눠 추천하도록 하고, 이들을 대통령이 임명하기 전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동의를 받도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재판관 구성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헌법 해석을 특정 세력이나 집단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보수정권이라고 해서 야당이 추천한 진보 성향의 후보자를 말이 안 되는 이유로 거부하게 되면 1987년 이후 자리를 잡아왔던 한국 민주주의의 틀 자체가 위협받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거부해서는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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