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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정전사태, 누구를 탓하는가 / 홍대선

등록 2011-09-20 19:24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와
공급 위주의 전력 정책이
낳은 필연적 산물이라는
질책이 더 따갑게 들린다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를 겪고서 터질 게 터졌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전력 수급 문제와 운영 방식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예고된 인재였다고 말한다. 정전대란의 1차적 원인으로는 전력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전력당국의 무능이 꼽히지만,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와 공급 위주의 전력 정책이 낳은 필연적 산물이라는 질책이 더 따갑게 들린다.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걸까. 전력 수급의 문제를 한번 보자. 전기는 정부가 시장가격을 인위적으로 억눌러온 대표적 상품이다. 지금도 그러하다. 문제는 시장가격과 상관없이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으면 강제적인 조정 국면을 맞아야 한다. 전력당국이 ‘지역별 순환정전’에 들어간다며 일순간 전국을 혼란에 빠뜨린 ‘9·15 단전’ 조처가 바로 이것이다.

정부가 전력 수급 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닐 텐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역대 정부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해 설비 공급을 꾸준히 늘렸다. 공급 확대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훨씬 더했다. 그런데도 수급 조절은커녕 수요 예측에도 실패했다. 왜 그런가. 전력 수급 계획의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전대란은 지금처럼 발전소 건설 위주의 공급 정책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7배에 이른다. 생산원가 대비 전력요금 비율은 86%밖에 안 된다. 전기수요 구조와 요금 체계를 보면, 산업용이 가장 심하다. 산업용은 전체 전력의 절반을 넘게 사용한다. 가정용은 15%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전기요금은 가정용이 가장 비싸다. 가정용은 일정 사용량을 초과하면 누진세를 적용하는 반면, 산업용은 많이 쓰면 깎아주기까지 한다. 가정은 누진세, 기업은 역누진세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런저런 혜택으로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일본의 37%에 불과하다.

한국전력은 최근 3년간 6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전기를 파니 과잉 소비가 일어나고 한전 적자가 누적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싼 전기요금의 폐해가 누구한테 돌아갈지는 뻔하다. 세금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전기요금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기업도 가계도 싼 요금의 늪에 빠져 전기를 펑펑 써대니 정부는 발전소 건설이라는 공급 정책에 매달리는 행태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올인하는 원전은 그 자체의 위험성도 크지만 전력산업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 원전은 전력 공급의 경직성이 너무 크다. 발전소별 정지상태에서 기동시간은 양수발전소가 3분, 복합화력발전소 1.5시간, 원전은 2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정전사태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데 원전의 유연성이 가장 떨어질 수밖에 없다. 원전 1기당 전력생산량이 100만㎾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예비전력량이 100만㎾ 이하로 내려갔을 때 원전 하나만 고장이 나도 전국적인 동시정전 사태인 블랙아웃을 초래하는 끔찍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현재 가동중인 21기의 원전 말고도 2024년까지 14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해 원전 비중을 50%까지 늘린다는 구상이다.

이번 정전대란은 원전 탈피에서 전기요금제도 개편까지 국가 에너지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다. 분노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전에 가서 “여러분 정말 형편없다”고 질타했다는데, 책임 추궁에 핏대를 올리기보다 에너지 정책을 원점에서 돌아보고 결단을 내리는 게 분을 삭이고 있는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길 아닐까.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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