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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위기의 본질 / 이원재

등록 2011-09-25 19:03수정 2013-05-16 16:38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한국 기업은 이미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 위험한 것은 개인이다
‘경제위기’가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원화 환율이 급상승하고, 주가는 요동을 친다. 대기업이 줄줄이 파산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1997~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국가마저 채무로 휘청이고 있다니 더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레 낙관한다. 한국 기업은 이번 위기를 잘 방어할 것이다.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의 기둥은 어느 때보다도 튼튼하다. 수출증가율은 매월 20%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출 대상국도 진통 중인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신흥국으로 적절히 분산되어 있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여전히 급성장 중이다. 게다가 한국 기업은 이미 체계적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과거처럼 끌어안고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전가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을 동반한 금융위기에서도 그랬다. 글로벌 기업들이 정신 못 차리고 흔들리던 그때, 한국 기업의 수익성은 견실했다. 원자재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수출길이 막혀 매출성장률이 낮아져도, 기업은 방법을 찾아내 이익을 냈다. 그만큼 영리하고 튼튼해졌다.

그런데 위험은 누군가 끌어안고 있기 마련이다. 지금 위험한 것은 개인이다. 빈곤층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개인 금융부채는 2007년보다 32%나 늘어난 상태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행복도는 점점 떨어진다. 10여년 전만 해도 ‘경제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꼽던 국민들은, 이제 ‘복지’와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복지와 삶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뜻이다.

부실한 기업이 문제였던 과거 위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부실한 가계가 경제의 약한 고리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이번 위기는 기업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을 직접 때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향후 1~2년 동안은 한국 사회가 실적 좋은 대기업한테 사회적 정당성을 심각하게 따져 묻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동안 지배구조부터 전기료에 이르기까지 그만큼 보호해주며 키웠는데, 왜 홀로 주주를 위한 이익을 지키며 위험을 외부로 전가하고만 있는지 사회는 궁금해할 것이다.

결국 주주의 대리인으로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최근 10여년 동안의 기업 경영 원칙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재무적 수익성 확보를 위해 쏟던 노력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 정당성을 얻는 데 쏟아야 할 것이다.

우선 개별기업 이익이 아니라 협력업체와 노동자를 포함한 생태계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 의사결정 목표를 바꿔야 한다. 또 사회책임경영(CSR)을 홍보 도구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상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르게 참여시키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예 사회적 사명을 띤 사회적 기업도 더욱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클레망 쥐글라는 “불황의 유일한 원인은 번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지금 세계 경제 위기의 근원은 탐욕에 기인한 과생산과 과소비다. 후손들의 돈을 국가채무라는 이름으로 마구 빌려와서 써버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많이 빌려 많이 쓸수록 더 행복해진다고 가르치던 ‘탐욕의 경제’가 이제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250년 전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이 시장경제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그 뒤 자본주의는 ‘탐욕의 윤리성’을 믿으며, 그 동력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한국 경제도 오랜 기간 동안 기업의 탐욕이 선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용인했다. 그 시기가 저물고 있다. 이제 탐욕은 윤리적이지 않다. 진정 윤리적인 동기만이 윤리적이다. 한국 대기업들이 꼭 알아야 할 이야기다. 트위터 @wonjae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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