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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이승만 미화는 주권자 국민 모독 / 안병욱

등록 2011-10-03 19:46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한국사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한국사
국민의 저항으로 축출된 독재자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반역이자 천하의 조롱거리가 될 뿐
<한국방송>(KBS)은 논란 속에 이승만 특집을 강행하면서 ‘이승만은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건국자 이승만 때문에 존재한다는 발상이다. 그에 따라 이승만의 행적을 꾸미고 포장하여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비판받아 온 부분은 교묘하게 변명했다.

방송에서 부정적인 견해도 여러차례 소개해 객관적 균형을 갖춘 듯했지만 구색에 지나지 않았다. 큰 줄기는 이승만이 남긴 기록을 비롯해 그 주변 인물들의 주관적 의견과 우호적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내세워 구성했다. 심지어 4·19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승만이 스스로 사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4·19 항쟁조차 그의 공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과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역사에는 늘 고비가 있고 그때마다 소임을 떠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마침 이승만은 민족사의 가장 큰 시련기에 활동했다. 그리고 그의 행적은 민족사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 후과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 위상 때문에 그는 늘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우선 이승만은 빈번한 정치적 암살을 비롯해 한국전쟁 전후 자행된 무고한 수많은 인명 살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자 국민들을 결집하여 방어에 나서기는커녕 야반도주하면서 서둘러 대부분 이념과는 무관하게 동원하여 억지로 가입시킨 보도연맹원들을 수만명이나 집단학살했다. 적이 점령했을 때 협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예방책으로 미리 제거한 것이라고 했다. 문명사회에 이런 잔인한 경우가 또 있을는지.

이승만이 주장한 외교독립론도 기실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미국은 신탁통치안을 제안하면서 한국인들의 자치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만일 이승만을 비롯한 당시 지도자들이 합심하여 국제사회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었더라면 어땠을까 추론해 보게 된다. 하지만 이승만은 그의 일생을 통해 가는 곳마다 갈등과 분란을 야기했으며, 일찍이 3·1 운동에 나타난 독립을 향한 전민족적 열망을 저버리고 위임통치안을 들고 열강들에게 간절히 청원한 바도 있다.

이승만은 1954년에 이미 노쇠하여 공적인 업무를 원활히 처리할 수 있는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간행된 <노태우 회고록>에 따르면 이승만은 그해 육사를 방문하여 사관생도들의 사열을 받고는 동석한 국방장관에게 여기가 어디고 뭐 하는 곳이냐고 마이크가 켜진 상태로 모두가 듣고 있는 상황에서 물었다는 것이다. 그런 혼미한 인지력의 상태로도 권력 야욕을 채우기 위해 전쟁은 아랑곳 않고 헌법을 누더기로 뜯어고쳐 7년이나 더 권좌를 차지했으며 무자비한 인명살상의 독재를 행했다. 그래도 부족해서 또다시 엽기적인 방법으로 3·15 부정선거를 자행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4·19, 5·18 광주항쟁, 6월항쟁 등을 통해 이승만과 그 추종세력이 구축해온 반공을 빙자한 극우 폭력사회에서 점차 탈각할 수 있었다. 반면에 위기에 처하게 된 수구 기득권층은 그러한 시대 흐름을 무력화하기 위해 이승만을 건국 시조로 내세워 반전을 꾀하려는 것이다. 과거 인물을 들춰내 억지로 미화하고 숭배한다면 이는 역사 영역 밖의 폐쇄적 우상화이거나 신앙 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철거된 동상을 다시 세우고 마치 왕조시대처럼 그를 조상신으로 추앙하면서 찬양하고 있다. 그의 행적을 신비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을 극우적 색깔로 재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이승만은 4·19 항쟁이라는 거대한 국민 저항으로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축출된 독재자일 뿐이다. 4·19는 정부 수립 이후 오로지 자신의 권좌 유지를 위해 국가와 역사를 파탄 낸 범죄적 행동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었고 역사의 거스를 수 없는 평가였다. 그렇게 국민의 저항으로 축출된 독재자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주권자 국민에 대한 반역이다. 역사를 부인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으로 천하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역사의 의미는 미래 지향의 가치관을 가지고 과거를 성찰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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