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치부 선임기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거대한 물결을
거스른 채 살아남을
정치세력은 없다
거대한 물결을
거스른 채 살아남을
정치세력은 없다
가히 쓰나미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년간 줄곧 계속됐던 박근혜 대세론이 하루아침에 흔들릴 정도다. 지난달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면서 정치권을 살짝 넘봤을 뿐인데도 안철수 교수는 각종 대선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이기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안철수로 대표되는 새 흐름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덮치고 있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무소속 후보는 애초 5% 정도의 지지율에 불과했지만, 안 교수한테 출마를 양보받은 데 힘입어 여야 정당의 후보자들을 크게 앞서고 있다.
새 인물의 화려한 등장이 우리 정치사에 없지 않았지만, ‘안철수-박원순 현상’은 그 강도에 있어 유례가 없다. 이들이 복잡한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 또 진흙탕 정치판을 견딜 ‘정치 근육’이 단단한지 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여의도를 덮치고 있는 물결의 본질은 국민들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 정치판 교체를 그만큼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거대한 요구에 한나라당은 수성전략을 채택했다. 보수적 시민사회세력의 대표주자로 뽑힌 이석연 변호사의 도전에 ‘입당하지 않으면 아예 상대하지 않겠다’고 문을 닫아걸었다. 본래 이 변호사가 쓰나미의 진원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인지라 힘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고, 그 덕택에 한나라당은 첫 파도를 손쉽게 물리쳤다. 앞으로 밀어닥칠 더 큰 파도에 대해서는 ‘박근혜 효과’에 기대하고 있다. 박 전 대표도 그동안 친이계의 독주에 반발해 당 운영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태도를 거두고, 이번에는 “정치의 위기”라며 당의 구원 요청에 즉각 호응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성벽을 두텁게 하기보다는 성으로 통하는 물길을 약간 여는 통수, 즉 일종의 편승전략이다. 시민사회세력을 대표한 박원순 후보가 깃발을 들자, 제1야당의 자존심을 접고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하는 경선을 받아들였다. 박영선 후보가 경선에서 진 뒤에는 박 후보를 입당시키려던 압박도 거둬들였다. 대신 손학규 대표부터 앞장서 박원순 시장 만들기에 당력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두 당의 대응 차이는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에 대한 전략과 입장차 때문에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은 박근혜라는 독보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처지인 데 비해 민주당은 야당의 큰형이라는 지위를 고수하기보다는 당 안팎의 지지를 한데 끌어모아야만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쪽 다 앞으로 닥쳐올 정치 쓰나미에 대응하는 전략으로는 어림없거나 미진하다. 보수정당의 정체성, 나아가 기존 정치판을 지키면 된다면서 새로운 변화 요구에 맞서는 한나라당 방식은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안철수-박원순 현상’은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 등에서 일고 있는 문명 전환 모색 등 세계사적인 움직임과 흐름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몰려오는 거대한 물결을 거스른 채 살아남을 정치세력은 없다.
새 인물 몇몇을 수혈하는 등 흐름에 적당히 편승해서 버텨보려는 민주당 방식도 해법이 아니다. 단지 반엠비의 깃발이 크다는 것만으로는 혼돈의 시대를 헤쳐나갈 방향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원순 후보의 경우에서 보듯, 민주당이 문호를 연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들어올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쓰나미가 올 때 가장 안전하려면 수심이 깊은 한바다로 나가야 한다. 정치권도 격랑의 진원지인 민심 깊이 들어가야 한다. 점점 소외돼 사회 변방으로 내몰리는 ‘노동’과 ‘청년’을 정치 주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해서는 여든 야든 쓰나미에 쓸려 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phillkim@hani.co.kr
쓰나미가 올 때 가장 안전하려면 수심이 깊은 한바다로 나가야 한다. 정치권도 격랑의 진원지인 민심 깊이 들어가야 한다. 점점 소외돼 사회 변방으로 내몰리는 ‘노동’과 ‘청년’을 정치 주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해서는 여든 야든 쓰나미에 쓸려 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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