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진보는 논쟁에서 이기고,
선거에서 패배하며,
일상에서 참패한다”
선거에서 패배하며,
일상에서 참패한다”
“나의 권리 이외의 것에 일체 관심 갖지 않는다.” 언젠가 법과대학 고시생 전용 도서관 칸막이에서 우연히 이 글귀를 봤다. 아찔했다. 이 기가 막힌 신조를 좌우명으로 삼아 공익의 봉사자가 되겠다니 사익 앞에 공공의 가치는 이제 하찮은 것이 되는구나, 마침내 정의는 이렇게 퇴락하는구나 싶었다.
그때가 어느 때였던가.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학살하고 백골단이라는 깡패경찰을 앞세워 시민을 ‘합법적’으로 구타하던 때였다. 위아래 없이 억압과 폭력이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모든 일상이 비틀렸다. 여학생은 화장은 물론이거니와 치마 입는 것도 제 맘대로 못했다. 심지어 이십대 초반 피끓는 청춘들에게 연애도 죄악이었다. 선배들은 연애하는 후배에게 시국이 어느 시국인데 연애질이나 하고 있나, 네 사적 감정을 사회화시켜라 질타했다. ‘시국’ 앞에 욕망은 죄스러운 것으로, 사익의 추구는 천박한 것으로 여겨졌다. 엠티를 가서는 독재타도·민주쟁취·노동해방·조국통일, 구호를 외치며 군대식으로 오와 열을 맞춰 집단구보를 했다. 그렇게 진보의 껍데기 속에 또 하나의 파시즘이 자리잡았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존재했지만, 모두는 하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적 다양성이나 다원성이란 사치 또는 기만에 불과했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한편에선 극단의 탐욕적 사익추구가 공적 영역을 점령하고, 다른 한편에선 또다른 극단의 집단주의가 똬리를 틀었다. 나와 다르면 적이라는 공익의 파시즘적 구성이 진보를 채웠다. 그렇게 청춘을 보냈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제껏 로또복권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을 그저 ‘탐욕’으로 치부했다. 알량한 내 주식이, 내 펀드가, 내 부동산이 대박 터지길 바라는 심정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을 단지 사익의 포로가 된 채 ‘공유지의 비극’을 향해 치달리는 어리석은 이들로만 여겼다. 나의 대박이 저편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한숨과 절망의 대가라는 점을 애써 외면한 탓에, 그런 몰염치를 토대로 오만하고 부패하고 탐욕적이며 사술에 능한 정치집단이 공적 영역을 장악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의 그 비루하고 구차한 삶이 도대체 어디로부터 연원해서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또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말로는 세상의 변화를 외치면서도 막장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비상구를 찾아 나서는 데 게을렀다. 많은 사람들이 왜 진보를 믿음직한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지에 대해 깊게 성찰하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우리들끼리 분노하고, 그 분노에 공감하거나 동참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그들을 탓했다. 게다가 진보의 확장성을 한낱 자유주의에의 투항, 또는 사이비 진보로 간주하였다. 공허한 순결주의와 원칙론을 고집하며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럴수록 확장성보다는 배제가 강화되었고, 또 그런 만큼 분열과 고립이 깊어졌다. 그 그늘에 거악은 가려지고 대중은 등을 돌렸다. 오죽하면 “진보는 논쟁에서 이기고, 선거에서 패배하며, 일상에서 참패한다”는 말까지 나돌게 됐을까.
이제 이런 얼치기 진보는 앞으로 다시 없을 것이(길 빈)다. 마침 지금 우리 사회는 큰 변화의 전기를 맞고 있다. 진보의 재구성, 혁신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때다. 이 거대한 변화의 요구가 누구 말대로 기껏 자유주의의 세력 재편으로 그칠지,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도정이 될지는 순전히 진보의 폭넓은 행보, 요컨대 진보의 확장성 여하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그 첫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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