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대출금리는 높이고
예금이자는 적게 줘서
올 상반기 10조 수익
고리대금업자 뺨치네
예금이자는 적게 줘서
올 상반기 10조 수익
고리대금업자 뺨치네
“마이너스통장 대출 기한이 끝나가는데 연장하시겠습니까?”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몰아치던 2009년 봄 은행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망설이고 자시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은행 창구에선 연 5%인 금리를 9%대로 올려야 한다는 게 아닌가.
1%포인트도 아니고 무려 4%포인트씩이나?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은행원은 신용등급 하락이 원인이라고 했다. 그동안 금융거래에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자를 연체한 적도 없는데, 왜? 따지듯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리먼 사태 이후 은행의 수익성이 떨어졌고 그게 고객 등급을 조정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가 생각되네요.”
금융자본의 탐욕에 분노하는 물결이 미국 월가를 넘어 여의도에 상륙할 즈음, 2년여 전 은행에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당시 메모를 찾아봤더니 그 직원은 “적금이나 연금보험에 가입하면 금리를 조금 낮출 수 있다”고 마치 인심 쓰듯 ‘미끼 상품’을 권하고 있었다.
보통 은행 대출이자는 시장금리에 스프레드라고 하는 가산금리를 더해 산출하는데, 나의 경우도 여기에 걸린 것 같았다. 은행 쪽에서 대출자의 신용도와 거래 기여도, 대출 기간 등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게 가산금리다. 그런데 이게 고무줄처럼 들쭉날쭉이다. 예컨대 은행의 경영여건이 나빠지면 가산금리를 올려 수익을 맞추는 식이다. 대출 총량이 줄어 수익성이 일시 떨어지더라도 은행은 가산금리를 올려 이자를 더 받으면 그만이다. 얼마 전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은행 배만 불렸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은행에서 어렵게 빌린 돈의 기한을 연장할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자율을 올리려 별의별 구실을 대는 은행과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겠지만 결국은 두 손 들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얄미운 영업수법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시중은행 출신인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고객을 유인할 때는 낮은 금리를 제시하고 1년 연장할 때마다 거래관계가 적다느니 평가 등급이 떨어졌다는 따위의 이유로 이자율을 올리는 건 은행의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말한다. 그가 연 6.5%에서 시작한 마이너스통장 대출금리도 비슷한 이유로 2009년 7.5%에서 2010년 9.0%로 뛰었다. 이자놀음에 빠진 은행은 같은 은행 출신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주로 서민들이 부담하는 이자는 이제 은행 배를 불리는 원천이 돼버렸다. 국내 은행이 올해 들어 상반기에만 사상 최대인 10조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챙긴 것도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익인 예대마진을 늘린 영향이 컸다. 대출금리는 높이고 예금이자는 적게 줘서 낸 이자수익 비중은 전체 순익의 80%를 넘는다. 은행의 주요 수익원이 예대마진이라지만 이쯤 되면 고리대금업자와 뭔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다.
수수료 수익도 엄청나다. 올해 상반기 은행들이 챙긴 수수료 이익은 2조25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다. 은행별로 100가지가 넘는 수수료를 둔 이유를 알 만하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위험에 빠진 은행을 살린 건 국민 세금인 공적자금이었다. 물에 빠져 구해주니까 보따리 뺏더라니, 서민들을 쥐어짠 수익으로 돈잔치를 벌인다니 세상이 야단인 것이다.
탐욕스러운 금융시스템을 방치한 건 금융감독기관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7월 ‘소비자금융보호청’(CFPB)을 출범시켰다. 월가 대형은행의 부실과 부도덕에 대한 감독 실패와 반성에서 나온 후속 조처다. 우리도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를 더 미룰 이유가 없다. 그것을 무능한 감독기관 안에 묶어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hongds@hani.co.kr
탐욕스러운 금융시스템을 방치한 건 금융감독기관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7월 ‘소비자금융보호청’(CFPB)을 출범시켰다. 월가 대형은행의 부실과 부도덕에 대한 감독 실패와 반성에서 나온 후속 조처다. 우리도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를 더 미룰 이유가 없다. 그것을 무능한 감독기관 안에 묶어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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