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시사평론가
정시 뉴스에서
오세훈 시장의
청소 지도 소식을
전하던 <교통방송>
오세훈 시장의
청소 지도 소식을
전하던 <교통방송>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열어둘 무렵이었다. 그가 주최하는 청춘콘서트에 초대받아 간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시장 되면 나에게 <교통방송>을 달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후보였을 때도 동일한 요구를 했다. 물론 모두 농담이었다. 그러나 박 시장 당선 후 김 총수는 “그 욕망을 포기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상식적으로 지상파 방송은 공공재니 누구 것이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그러나 실제 ‘접수’한 이들이 있었다. 이명박·오세훈 두 전직 시장이다. 개인적으로 기이한 일을 겪었다. 이 방송에 한창 고정출연하던 2009년 어느 날, 정시 뉴스에서 오세훈 시장이 청소를 지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통방송>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 아시면서 왜 이러세요. ‘파란 깃발’이 꽂힌 뒤로 우리에게는 일상사예요”라고 답했다. 불현듯 1983년 9월1일 대한항공기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돼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하던 날, <한국방송> ‘뉴스9’가 “전두환 대통령이 서울 청운동에서 물청소를 지도하셨다”는 소식을 톱으로 다뤘던 ‘땡전뉴스’ 사례가 떠올랐다.
진보시장 박원순의 서울호가 출범했다. 지상파 에프엠 두 개와 디엠비, 케이블티브이 등을 서비스하고 있는 <교통방송>을 휘하에 두게 됐다. 그래서 박 시장이 이를 전리품으로 인식해서 온존케 할 것인지 혹은 공영적 구조로 개편해 시민에게 돌려줄 것인지 관심거리다.
<교통방송>은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산하 사업소다. 일반 기업에 비유한다면 힘없는 자회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외형은 방송 즉 언론인데, 경영과 인사, 회계 체계도 이에 준할까. 아니다. 다른 방송의 경우 청취율이 핵심 가치인 반면, <교통방송>은 서울시정 홍보 횟수 및 내용을 성과로 따진단다. “방송의 적합성은 <교통방송>에서는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라는 게 직원의 증언이다.
사실 시민에게 시정을 홍보하는 것이 그릇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민투표 참여를 유도하는 문안을 방송 중에 멘트로 소화한 점이나, 오 시장이 ‘시장직’을 걸겠다고 공언한 뒤 음악프로그램에서조차 여당 성향으로 정평이 나 있는 평론가를 연결해 거론케 한 부분, 주민투표 하루 전 출근시간대에 오 시장을 전화로 불러 발언권을 준 점. 이는 어찌 봐야 할까. 전 시장인 이 대통령이 중앙권력의 수장이 돼 <한국방송>, <문화방송> 등 공영방송 사장 자리에 측근을 앉히는 식으로 장악한 점을 떠올리면 차별됨이 없다.
다른 유수의 방송은 노조를 설립해 산하에 공정방송위원회를 두어 이런 전횡을 감시한다. 그렇다면 방송의 건강성을 구현하기 위해 <교통방송> 피디·기자·아나운서들은 무엇을 했을까. 뚜렷이 없다. 그러나 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후진적 인사구조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이들 방송제작진은 신분상으로 지방 계약직 공무원에 해당한다. 5년마다 재임용받아야 한다. 이렇게 네 번을 ‘무사통과’해야 공무원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인사권 가진 이가 내부 통제하기 딱 좋은 구조다. 아울러 자신의, 그러니까 자신을 세운 시장의 성향과 욕심에 따라 얼마든지 프로그램 편성과 제작 및 인사를 감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인지 노조나 공정방송을 위한 제작직원 중심의 내부감시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청취율이 하향세이고, 이직률이 높아지고 있고, 방송의 영향력도 축소되고 있으며, 아울러 예산낭비 논란도 확대되고 있다. <교통방송>에 이명박·오세훈 집권기는 ‘잃어버린 10년’이다.
거론해서는 안 될 사안이 있고 출연해서는 안 될 대상이 있는 한나라당 정권의 <교통방송>. 박 시장 대에는 달라야 마땅하다. 중요하다. <교통방송>이 어떤 정체성을 가질 것인가 하는 점은 진보 집권 시대에 언론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느냐를 가늠할 척도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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