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2년 전 ‘그랜드바겐’을 비난한
북한이 이번엔 관심을 표명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북한이 이번엔 관심을 표명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9월21일 미국 외교협회 등이 주최한 오찬 연설에서 청와대 대변인의 표현을 빌리면 북핵 문제의 ‘근원적 처방’을 내놨다. 그랜드바겐이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 즉 그랜드바겐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응은 의외였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같은 날 “솔직히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다음날 “미국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왜 그랬을까? 그랜드바겐은 ‘원샷 딜’을 하자는 것이다. 완전한 핵폐기까지의 과정에는 단계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 한 방에 끝내자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북한의 반응은 누구도 놀라게 만들지 않았다. 10월1일 북한 <중앙통신>은 “‘비핵·개방·3000’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며 ‘핵문제 해결에 백해무익한 제안’이라고 비난했다.
근데 지금 우린 전혀 다른 상황을 맞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월 2차 베이징 남북 비핵화 대화에서 그랜드바겐에 관심을 표명했을 뿐만 아니라 ‘세부적 논의’가 이뤄졌다고 정부의 한 핵심 외교당국자는 확인했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2년여 전 그랜드바겐은 구체적인 내용과 추진방안이 없었다. 핵프로그램 폐기의 핵심 부분이 무엇인지, 어떤 안전을 보장할 것인지, 국제지원의 본격화는 뭘 말하는지 내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 외교당국자에 따르면 그동안 그랜드바겐을 토대로 미국과 ‘세세한 부분’까지 협의했으며, 중국·러시아·일본도 큰 틀에서 공감했다는 것이다. 6자회담 차석대표인 조현동 외교부 북핵기획단장은 7일 “그랜드바겐 이니셔티브에는 구체적인 시간표와 행동조치들이 포함돼 있다”고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연설에서 “북핵 폐기의 종착점에 대해 확실하게 합의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행동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5자 간의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들의 말은 이제 남북, 북·미가 그 행동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08년 12월 핵 신고 검증을 위한 시료채취로 결렬됐던 2단계 북핵 불능화 조처를 넘어 북·미가 3단계 핵폐기를 위한 본격적인 협상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0월27일 ‘제네바 조미회담,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집중 논의’라는 기사에서 북-미 대화는 “6자회담이 재개됐을 때 확인될 새로운 비핵화 로드맵의 초안을 작성하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물론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제네바 북-미 대화가 6자회담을 재개할 만큼 북한의 핵폐기 의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건 미국이 선결조처로 요구한 우라늄 농축 중단을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이 대화 뒤 외신기자들에게 “우라늄 농축은 평화적 핵활동이며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제1부상은 “그걸 그만두려면 거기에 따른 조처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해 ‘농축 중단’이 협상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에 상응조처를 요구한 셈인데 북·미는 뉴욕 채널을 통해 계속 접촉하기로 함으로써 실질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제네바 대화를 끝으로 대표에서 물러난 보즈워스는 낙관적 전망이라고 말했지만 북·미는 6자회담이 열리는 걸 전제로 논의하고 있다. 그건 3단계 핵폐기의 문제다. 그랜드바겐이 핵폐기의 종착점에 대한 새로운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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