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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보수주의의 본령과 한-미 FTA / 김대원

등록 2011-11-09 19:24

김대원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대원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통을 지키면서 변화에 적응하는
현실주의”가 보수주의의 본령이라면
진정한 보수주의자에게 한-미 FTA는
시기상조라고 판단될 수밖에 없을 것
여타의 자유무역협정(FTA)과 다르게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둘러싸고 유달리 격하게 대립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미국이 우리와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까운 만큼 지난 세기 동안 두 나라는 많은 것을 공유해왔다. 군사적 ‘혈맹’이며 경제적 ‘동반자’로서 여전히 한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지금까지 미국의 비공식적인 영향력을 단지 공식화하는 선언 정도로 판단하여 그 구체적인 내용과 무관하게 무조건 수용하고자 하는 보수적 정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전통을 지키면서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는 현실주의”가 보수주의의 본령이라면 진정한 보수주의자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기본적으로 무역협정이다. 따라서 협정을 통한 무역 ‘창출 효과’가 ‘교란 효과’를 웃돌고 그것이 국민 후생 증진에 기여해야 협정의 원칙적 정당성이 있다. 최근 보도를 보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뒤 지난 7년간 무역적자가 89억달러에 달한다고 하는데(<한겨레> 11월2일치), 협정 체결 당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무역흑자를 연 3억2000만달러로 예상하고 그에 따른 경제성장 효과까지 예측한 점을 상기하면 명백히 잘못된 예측이었다. 이런 오류는 지난 8월 11개 국책연구기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경제성 평가 보고서에도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적 효과 산정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방 수준이 이미 충분히 높고 자유무역협정을 국가 간에 중복 체결함으로써 그 경제적 효과가 최소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프레임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급진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회협정이다. 왜냐하면 협정의 경제적 효과 분배에 따른 빈부격차의 증대, 다국적기업 중심의 제도 개편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성과 고용불안 증대 등의 사회문제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공공정책에 미치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의 잠재적 영향까지 생각하면 상당한 변화를 각오해야 한다. 또한 교육·의료체계 변화 및 그 비용의 증대에 따른 사회적 충격도 필연적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그간 보여준 사회정책의 방향과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등을 볼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후를 제대로 관리하기 힘들다고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한반도의 정치적 미래와 관련된 정치협정이다. 미국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이 중국 견제를 위한 ‘환태평양 공동체’ 구상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라는 거시적 비전과도 관련되어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그만큼 장기적 영향력을 갖는 민족공동체의 문제이며 국제정치적 대응능력이 필요한 선택이다. 하지만 대미 일변도 외교와 현재의 남북관계 파행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현 정부의 역량으로는 이 또한 벅찬 문제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지향하는 정도의 경제적 통합은 현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양국간 사회 및 경제체제의 공통성을 전제할 때만 양국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시행 17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에 대한 찬반여론이 비등한 미국을 포함한 북미 3국의 경험에서 알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현시점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진정한 보수에게는 더욱더 신중하고도 신중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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