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차도로 걸어가면 미친놈 취급하면서
인도 위로 올라온 차량엔 왜 관대할까
인도 위로 올라온 차량엔 왜 관대할까
점심 무렵 서울 마포구 공덕오거리 부근. 오토바이 한대가 비좁은 인도 위를 질주하더니 어린아이 앞에서 급정거한다. “급해, 비켜.” 하마터면 칠 뻔한 상황인데도 운전자는 되레 신경질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륜차가 점령한, 이 빌어먹을 인도와 횡단보도 위로 걷는 게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불완전 연소된 연기와 굉음도 고역이지만 바퀴 두개 달린 이 난폭자에게 언제 어디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서다.
노약자들이 인도와 횡단보도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훨씬 크다. 만삭의 부인과 집으로 가던 후배는 갑자기 골목길에서 튀어나온 오토바이와 마주치는 순간 ‘살인 충동’이 일더라고 했다. 끼익 하고 멈춰서는데,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는 것이다.
오토바이 때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경험은 누구나 한두번쯤 했을 것이다. 인도와 횡단보도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만 경찰청 집계로 한해 평균 500명에 이른다. 사람을 깜짝 놀래고 줄행랑친 것까지 합치면 수천건은 족히 될 거다.
도로교통법 12조에는 차도에 차가 다니고 인도에 사람이 다니도록 규정해 놓았다. 이를 위반한 오토바이는 4만원의 범칙금과 벌점 10점을 부과받는 단속 대상이다. 오토바이가 보도를 침범해 사고를 내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게 돼 있다.
보도와 차도의 통행 구분이 이렇게 엄연한데, 단속 경찰은 뭘 하느냐고? 아마 경찰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단속이 제대로 이뤄진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언컨대, 인도 위 무법자를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는 생계형 종사자로 여겨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된다. 오토바이는 경제적이면서 편리한 운송수단이긴 하지만 인도에 올라오는 순간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일 뿐이다. 시간에 쫓긴 사업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반 시민이 희생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렇게 자문해봤다. 자동차는 인간에게 무엇인가. 도대체 사람들은 차도로 사람이 걸어가면 욕하고 미친놈 취급하면서 인도로 올라온 차량에는 왜 그렇게 관대한 걸까. 일본의 저명한 철학자 스기타 사토시는 자동차를 이용함에 따라 생기는 우월감과 인간과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이를 설명한다. 사람과 자동차, 다시 말해 보행자와 운전자 사이에는 대등한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자동차가 빠르고 훨씬 큰, 위협적인 존재라는 점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차에 타면 외부 보행자는 모두 익명의 객체일 뿐이다. 문명의 이기에서 인간의 비인간적 경향을 확장시키는 도구로 바뀐 자동차는 운전자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상실시킨다는 점에서 문명의 파괴자에 가깝다고 스기타는 혹평한다. 그러나 자동차 없는 세상은 현실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요소를 지니고 있을지라도 어떻게든 서로 공존할 길을 찾아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첫 시정연설에서 교통약자인 아이들을 위한 보행 환경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말이 나온 김에 교통정책의 틀을 한번 바꿔보는 게 어떨까 싶다. 지금까지 ‘속도’는 ‘성장’의 논리와 맞물려 전체 사회를 지배하는 증후군 같은 것이었다. 산업화 시대를 거쳐 급속한 경제성장의 길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서로를 재촉해온 ‘속도문화’에서 빠져나와 숨을 좀 돌릴 때가 됐다. 보행권 회복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게 어떨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전쟁터 같은 도시를 한번 바꿔보자. 지금이 자동차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통 철학과 발상의 전환을 꾀할 수 있는 기회다. hongds@hani.co.kr
박원순 서울시장은 첫 시정연설에서 교통약자인 아이들을 위한 보행 환경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말이 나온 김에 교통정책의 틀을 한번 바꿔보는 게 어떨까 싶다. 지금까지 ‘속도’는 ‘성장’의 논리와 맞물려 전체 사회를 지배하는 증후군 같은 것이었다. 산업화 시대를 거쳐 급속한 경제성장의 길에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서로를 재촉해온 ‘속도문화’에서 빠져나와 숨을 좀 돌릴 때가 됐다. 보행권 회복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게 어떨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전쟁터 같은 도시를 한번 바꿔보자. 지금이 자동차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통 철학과 발상의 전환을 꾀할 수 있는 기회다.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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