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이공현(62) 변호사는 대법원장 추천으로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사람이다. 지난 3월부터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다. 그가 최근 <아시아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헌법재판소야말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시각과 주장이 제기되고 평가받아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는 인적 구성에서부터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전제에 서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논리가 치열하게 부딪치는 절차가 중요한 것이고, 그 결과의 타당성은 다양한 시각의 제시와 토론 과정에서 확보될 수 있다.”
국회가 조용환(52)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선출 투표 절차를 미루고 있는 데 대한 원로 법조인의 묵직한 일침이다. 민주당이 추천한 조용환 후보자는 지난 6월28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쳤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 가운데 일부가 조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했다는 이른바 ‘천안함 발언’을 문제 삼는 바람에 표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따져 보지도 않고 천안함에 대해 자신들과 다르게 말했다는 이유로 ‘묻지마 반대’를 하고 있다. 국회가 선출하는 인사 투표의 경우, 여야가 상대 당 추천 인사는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협조’해 온 전례에 비춰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헌법재판소는 그사이 재판관 8인의 파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조용환 후보자 사태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인정할 수 없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전형적인 ‘꼴통’의 행태다.
본래 보수와 ‘꼴통’ 사이에는 태평양만큼 큰 간격이 있다. 보수는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 국가와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심한 관리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연하다. 진보적 주장을 묵살하지 않으며 보수와 진보의 공존을 추구한다. ‘꼴통’은 다르다. 승자독식의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자기와 다른 주장을 펴면 무조건 ‘좌파’라고 공격한다.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고려를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져 온 국민이 금모으기에 나섰을 때 ‘꼴통’들은 뒤에 숨어서 “순진한 국민들”이라고 비웃었다.
보수와 ‘꼴통’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도 다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극심한 세대투표로 한나라당이 패배한 뒤 보수를 자처하는 논객과 정치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첫째, 20~30대 유권자들의 마음이 왜 떠났는지 성찰하려는 흐름이 있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쇄신을 요구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20대 대학생들과 대화에 나서는 것, 홍준표 대표가 ‘나는 꼼수다’에 출연한 것도 그런 흐름의 일환이다. 부자 증세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둘째, 이러한 성찰의 움직임을 비판하며 오히려 기존 색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들은 20~30대 유권자들을 “철이 없다”고 비난한다. 또 이른바 ‘좌파’ 지식인들이 20~30대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고 한탄한다. 정책 대안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짜증만 낸다.
한나라당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은 절대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집단과 다르다. 변화를 요구하는 젊은 유권자들이 싫다면 집권을 포기하면 된다. 한나라당 지도부와 박근혜 전 대표가 대체로 전자의 흐름을 따르고 있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나 한나라당을 위해서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잘 될까? 쉽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좀처럼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조용환 헌법재판관 만들기’는 한나라당이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쉽게 정리해 보자. 이번 정기국회 회기 중에 조용환 재판관이 탄생하면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이 맞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의 경우에는 한나라당은 ‘꼴통’ 정당이다. 힘을 과시했으니 기분은 좋을 것이다. 대신 내년 선거에서 가망이 없다. 한나라당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연재성한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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