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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스마트시대, 나의 생산성 / 김진철

등록 2011-11-27 19:27

김진철 경제부 기자
김진철 경제부 기자
사라진 스마트폰…
추적에 실패했다
나의 낭패와 손해가
여럿에겐 돈이 됐다
1년 반 남짓 써온 스마트폰은 경기도 김포 어귀에서 최후의 발신을 마쳤다. 고촌읍 어디쯤으로 반경을 표시하고 있었다.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확인해준 결과다. 그날 나의 궤적은 마포구 공덕동, 홍대 앞,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지나 고양시 일산동구까지였는데, 도대체 이 녀석은 어떻게 김포까지 간 것이냐. 그제야 나는 모종의 낭패감에 빠져들었다. 선하지는 않아도 넉넉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 택시기사 양반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평소보다 조금 더 취했던 듯도 하다. 서울 홍대 어귀에서 2차까지 하고 자정을 조금 넘겨 택시를 탔다.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 휴대전화는 주머니에 없었다. 졸린 눈을 비비고 흐릿한 정신을 붙들어 매며 택시 안을 이리저리 뒤졌다. 머리 벗겨지기 시작한 택시기사에게 명함을 남겼다. 술집에 두고 왔을 수도 있겠지, 생각했다. 다음날 한 곳 일본식 선술집과 통화하고 두 번째 술집으로는 직접 찾아갔다. 어둑한 그곳에선 전등까지 비춰가며 샅샅이 뒤져봤지만, 없었다.

카드택시는 흔적이 남는다. 요금 결제 정보를 확인해 택시회사를 찾아냈다. 담당자는 기사와 통화한 뒤 알려주겠다고 했다. 여러차례의 통화를 거쳐 그는 간단히 귀찮은 민원 처리를 마무리했다. “없다고 하네요.” 덕분에 결국 위치추적까지 하게 됐지만, 김포 어귀에서 휴대전화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택시회사는 서울 강서구에 있었고 나를 태운 택시는 일산을 지나갔다. 그 사이에 김포가 있다….

경찰 도움을 받아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 분실 휴대전화를 개조해 중국 등지로 팔아넘기는 조직이 있다는 얘기도 떠올랐다. 앞좌석 아래로 떨어져 들어간 전화기를 꺼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업자에게 넘기는 기사의 모습이 상상됐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괘씸했다. 스마트폰이래도 오래된 기종에 곳곳에 흠집이 난 물건을 얼마나 받는다고. 숱한 연락처의 중요성은 모른다 쳐도 600여일 동안의 기억들이 남겨진 사진과 자잘하지만 소중한 단상이 기록된 메모들은…. 누가 그따위를 알아주겠는가.

과연 경찰이 나설까. 편리하기 그지없는 교통카드와 곳곳에 위치한 폐쇄회로 티브이 덕분에 요인도 아닌 내 일거수일투족은 알려고 들면 일도 아닌데, 블랙박스까지 달고 위성 위치확인 시스템까지 장착한 택시의 흔적을 알아내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러나 택시가 김포 고촌읍을 지나갔다 해도 그것이 결정적 증거일 수는 없다. 아니 택시 내부도 찍힌다지 않던가.

위치추적을 해준 대리점 직원은 심드렁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붉으락푸르락 안절부절못하는 나 같은 사람을 한두 명 봤겠는가. “이런 경우 많죠? 경찰에 신고하기도 하나요?” 그는 씩 웃으며 안됐지만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세상과의 고립과 시간 및 뇌용량의 낭비는 막아야 했다. “요즘 스마트폰 저렴한 건 얼마죠? 기종 변경만 해야 할 텐데, 비용이 얼마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 명의의 새 휴대전화가 생기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상 공짜라면서도 지원해주는 할부금의 이자와 부가세는 내야 한다고. 약정된 2년간 나눠내야 할 이자·부가세는 몇달 전 최신기종이었을 휴대전화 가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수십 군데 서명을 하고 나서 전화기를 들고 나서며 문득 무릎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휴대전화 분실사건이 야기한 생산성. 택시회사와 택시기사, 휴대전화 불법 개조업자, 휴대전화 밀무역조직, 이동통신사와 대리점과 대리점 직원, 휴대전화 제조회사한테 일으킨 아주아주 작은 매출. 어리석은 나의 몹시 작은 금전적·심정적·시간적 손해가 여러 사람들에겐 이익이 됐다.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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