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치부 선임기자
정치 선진화를 말로는 외치면서
행동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병폐
행동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병폐
한나라당이 쇄신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쇄신 방안을 찾기 위한 토론회와 연찬회로 연일 바쁘다. 홍준표 대표를 바꾸자, 박근혜 전 대표를 내세우자, 아예 신당을 만들자, 공천 물갈이를 하자 등등 그야말로 백가쟁명이다. 정책 부분에서도 서민예산을 늘리자부터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자까지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한다는 ‘쇄신’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아이디어들이다.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렇게 애쓰는 것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 요구에 눈감는 게 문제이지 시대 변화에 발맞추려는 게 흠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솔직히 한나라당의 이런 움직임은 전혀 미덥지가 않다. 뼈를 깎는 자기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기보다는 유행에 따라 겉모양만 뜯어고치는 ‘무늬만 쇄신’ 하려는 쇼로 보인다.
첫째, 진정성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시종일관 네거티브 선거를 했다. 검증이라는 미명을 내세워 박원순 후보에 대한 흑색비방을 내놓고 했다. 게다가 홍준표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앞장서 색깔론까지 꺼냈다. 선거운동이 끝나는 마지막날 당 공식 논평의 제목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 종북 시장에게 뺏겨서는 안 될 것!”이었다. 이렇게 추하고 낡은 선거전을 펼 때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았다. 선거 뒤에도 사실상 승리라는 둥 패배가 아니라는 둥 말 안 되는 말다툼만 있었지 네거티브 선거를 반성하는 목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대신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초래한 오세훈 전 시장을 원망하는 소리만 여전히 높다. 무엇을 진정으로 잘못했는지 아직 모르고 있다.
둘째, 상식을 외면하는 ‘꼴통 정치’의 관성을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환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의 선출을 5개월이 넘도록 국회에서 막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조 후보자는 지난 6월 인사청문회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질문에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만,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표현을 쓰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법률가로서 매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답변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정부 발표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관이 부족한 증거라며 그야말로 확신범 수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비논리가 이렇게 판치는데도 한나라당의 그 많은 법조인 출신 의원이나 개혁파 의원 가운데 그 누구도 상식과 순리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셋째는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 태도 탓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새 정치를 해보려고 노력하는 의원들이 한나라당에도 적지 않다. 투쟁과 대립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고, 기득권층보다는 서민을 챙기려는 이른바 소장개혁파들이 대표적이다. 홍준표-황우여 체제의 당 지도부도 청와대 거수기이기를 거부하고 여의도 정치의 복원에 나름 애썼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홍 대표는 야당과의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고 의원들을 의원총회장에서 본회의장으로 몰아넣은 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날치기 처리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홍 대표의 요구를 끝내 거절하지 못한 채 ‘비밀 본회의’라는 치사한 방법에 의존하고 말았다. 개혁파들도 마찬가지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의회 운영에 더 이상 동원되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 스스로 약속해놓고, 홍정욱·권영진 의원 두명만 빼고는 모두 지도부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말로는 정치 선진화를 외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항상 행동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새 정치와 변화를 위해서는 당 운영이나 체제를 뜯어고치고, 정책을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자기 잘못을 참회하고 속죄하는 게 먼저다. 변화된 행동은 하나도 없이 말로만 잘하겠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김종철 정치부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새 정치와 변화를 위해서는 당 운영이나 체제를 뜯어고치고, 정책을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자기 잘못을 참회하고 속죄하는 게 먼저다. 변화된 행동은 하나도 없이 말로만 잘하겠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김종철 정치부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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