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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나의 변액보험 운영기 / 김은형

등록 2011-12-06 19:30수정 2011-12-06 19:35

김은형 esc팀장
김은형 esc팀장
돌아보니 조삼모사의
말장난 게임이었다
요즘 십만원씩이라도 저금을 해볼까 하고 은행에 가면 영락없이 내놓는 게 변액보험이다. 그냥 정기적금을 들고 싶다고 하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예금금리를 보여주며 은행 직원은 ‘재테크 할 생각이 있는 거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얼마 전에는 불투명한 미래를 대비해 ‘티끌 모아 대학 등록금’이라도 시작해볼 요량으로 교육보험 가입 상담을 했더니 역시나 설계사는 두 종류의 변액보험을 제시했다. 설계사가 뽑아온 설계서의 비교 그래프를 보노라니 본래 계획했던 저축성 보험을 드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강고한 권유를 거부한 이유는 특별한 재테크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미 가입한 변액보험으로 충분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일 금융소비자연맹은 시판 변액보험 상품 38개의 수익률을 조사해 그 결과를 공개했다. 여기에 들어가보니 내가 가입한 상품의 수익률 순위는 딱 중간. 수익률만 놓고 보면 25.4%. 일부 상위 상품들처럼 대박은 아니지만 20%가 넘는 수익률이라니 어떤 적금 상품보다도 높은 이율이 아닌가. 그런데 7년 가까이, 그러니까 중간에 3개월을 건너뛰고 꼬박꼬박 79회를 부어넣은 원금은 여전히 일부가 비어 있었다. 그 사이 주가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처음 보험료를 납입한 2005년 4월의 종합주가지수를 확인해보니 900선. 보험을 가입할 때에 비해 갑절 가까이 주가가 올랐고 코스피 50위권의 우량주를 중심으로 투자를 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담당 설계사에게 이 놀랍도록 신묘한 숫자놀음의 이유를 물어보니, 일단 수익률은 사업비와 수수료 등을 뗀 보험료에서 환산한단다. 그러니까 전체 원금의 30%가량이 이미 사라진 금액에서 수익률이 계산된 것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이 내놓은 자료에 올라온 상품들의 수익률을 원금 기준으로 환산하면 절반 이상이 마이너스 수익이 되는 셈이다. 사업비·수수료야 그렇다 치자. 주가는 갑절이 상승했는데 20%의 수익률은 또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가. 변액보험에 가입할 때 가장 혹했던 건 주가의 상승과 함께 모은 돈이 불어나고 설사 주가가 떨어진다고 해도 이때는 싸게 주식을 매입할 수 있으니 오히려 이익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웬걸, 돌아보니 이 설명이야말로 조삼모사의 말장난 게임이었다. ‘코스트 애버리지 효과’ 등 금융이론을 곁들인 장황한 설계사의 설명을 풀어 말하면, 주가가 오를 때는 주식을 비싸게 산 꼴이고 주가가 떨어질 때는 이미 쌓아놓은 적립금이 줄어들었다는 뜻이었다. 앞의 설명이나 뒤의 변명이나 따져보면 엎어치나 메치나식의 같은 의미지만 그저 장기투자라고만 여기면서 주가 움직임에 따라 재빠르게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할 능력이나 기민함이 없는 가입자들에게는 뒤통수치기가 되는 셈이다.

기분이 상한 나는 변액보험의 또다른 장점이라고 들었던 자유로운 납입변경 요건을 기억해내고 금액을 반 정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줄이는 건 자유지만 그러려면 전체 납입보험료 중 그 금액 비율만큼 계약해지해야 한다고 한다. 반면 납입금을 늘리는 데는 계약해지가 필요 없단다. 이유를 물었더니 다시 이해 불가능한 고품격 용어들의 퍼레이드인데, 요약하면 약관이 원래 그렇다는 거다.

금융 담당 기자조차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워 기사 쓰기 가장 까다로운 게 보험이라는데 보험계약서에 선뜻 찍은 내 ‘마이너스의 손’ 도장을 탓할밖에! 이 와중에 오래전 가입한 암보험(이것도 변액보험으로 중도변경해 마이너스 고고씽 중이다) 설계사가 찾아왔다. “마지막 기회예요. 손실이 날 수가 없는 설계예요”라며 변액연금보험 가입설계서를 내민다. 변액보험의 유혹. 언제까지 이어질까. 김은형 esc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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