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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데카브리스트 / 정영무

등록 2011-12-11 19:21

1825년 12월1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는 3000여명의 군대가 미명을 뚫고 거사에 나섰다. 귀족 출신의 청년장교들은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 날 차르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부하고 농노제 폐지와 전제정치 근절을 요구했다. 청년장교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개혁에 나선 이유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다.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파리까지 추격하는 과정에서 혁명을 거친 풍요롭고 자유로운 유럽 사회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고 낙후된 러시아 개혁에 의기투합했다.

반란은 정부군에게 곧 진압당해 날이 채 저물기 전에 막을 내렸다. 주동자 5명은 처형됐으며 120여명이 시베리아로 유배됐다. 12월(러시아어로 데카브리)에 거사했다는 데에서, 이들은 데카브리스트라는 별칭을 얻었다. 전제정치에 대항한 혁명 시도는 비록 실패했지만 뒷날 러시아 혁명의 모태가 됐다.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이 보여준 순애보도 유명하다. 이혼과 재가를 전제로 귀족 작위를 유지하든지 맨손으로 시베리아로 가든지 택하라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사랑과 고난의 길을 택한 부인들의 삶은 여러 문학작품 속에서 살아 숨쉰다.

지난 주말 러시아 주요 도시에서 ‘푸틴 없는 러시아’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졌다. 도화선은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부정선거 의혹이지만 만성적인 고물가와 실업난 등으로 고조된 불만이 터져나왔다. 푸틴은 한때 17세기 러시아 서구화를 주도한 계몽군주 표트르 대제에 비유돼 ‘표트르 푸틴’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나 지금은 니콜라이 1세를 닮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무력진압하고 철권통치를 편 것처럼 언론 탄압에 이어 법치와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독한 추위에도, 아랍의 봄을 뛰어넘는 러시아의 겨울이 도래할지 주목된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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