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정부가 지금껏 내놓은 물가안정
약속들은 모두 구두선이 됐는데…
약속들은 모두 구두선이 됐는데…
한번 오르면 내려오기 어려운 게 물가다. 회사 근처 음식점의 콩나물국밥 값은 연초에 500원 오르더니 가을 무렵에 한번 더 뛰었다. 음식값, 목욕료, 이·미용료 같은 개인서비스 요금에서 각종 가공식품, 공공요금까지 가격 인상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다시 4%대로 뛰었다. 대체 4%대 물가가 뭐 그리 대수냐고 할 테지만, 민심이 흉흉한 시기에 물가가 임계치까지 치솟으면 정권의 안위까지도 위태로워지는 법이다.
4%는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목표치(3±1%) 상한선이기도 하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3.8%로 예상한 정부는 물가상승률을 3%대에서 묶어두려는 욕구가 강했다. 그러나 결과는 영 딴판이다. 통계 꼼수 논란 속에 새 물가지수를 도입했는데도 4% 저지선이 뚫려버렸으니 말이다.
지금 물가는 경제성장률을 추월하는 비상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물가가 성장률보다 높아지면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성장률은 3%대, 물가는 4%대가 되니 실질적인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라는 말이 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단 한번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넘지 않았다. 2003년과 2004년은 3%대 중반, 이후 3년 동안은 2%대를 유지했다. 집권 5년간 평균 물가상승률은 2.9%, 경제성장률은 4.3%였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인 2008년에 물가가 4.7%를 기록했다. 올해 물가는 9월 한달을 빼고는 매달 4% 이상 고공행진이다. 8월엔 5.3%까지 급등했다.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물가가 위로 올라서는, 이른바 ‘역전 현상’은 좋지 않은 징조다. 이 정부를 빼고 지난 20년간 물가가 성장률을 앞지른 때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1년 아이티(IT) 버블 붕괴, 2003년 카드사태 때 세 차례다.
높은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3월 청와대에서 내려온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불을 지폈다. 김 총재는 정부에 친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하다가 “실기하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물가를 잡을 적기를 놓치고 말았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고, 가계대출은 풀릴 대로 풀리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오를 대로 올랐다.
그가 총재로 부임할 즈음에 한은을 출입했던 나는, 이성태 전 총재가 한은을 떠나면서 남긴 말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 전 총재는 “한은도 정부다”라고 외치는 김 총재를 향해 “중앙은행의 위상, 특히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화두로 던졌다. <논어>의 ‘자로’편에 나오는 이 말은, 사이좋게 지내지만 의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는 뜻이다. 자기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에 빗대어 한은 본연의 존재 목적, 즉 물가안정 노력과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다.
올해 청와대에서 내려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현실 인식에서는 김 총재 못잖은 것 같다. 20~30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50~60대가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서글픈 현실에서 ‘고용대박’이라고 초를 쳤으니 개그도 이런 개그가 없다. 정부는 그저께 발표한 ‘2012년 경제전망’에서 내년 물가 상승세가 올해보다 약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물가가 크게 오른 데 따른 기저효과로 보면 숫자상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부 기대대로 서민의 물가 부담이 줄어들지는 알 수 없다. 정부가 지금껏 내놓은 물가안정 약속들은 모두 구두선이 됐는데 또 낙관적 전망을 되뇌니까 하는 말이다. 정말 걱정되는 건 관료들의 안이한 현실 인식 아래 경제가 고물가 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늪으로 점차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hongds@hani.co.kr
올해 청와대에서 내려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현실 인식에서는 김 총재 못잖은 것 같다. 20~30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50~60대가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서글픈 현실에서 ‘고용대박’이라고 초를 쳤으니 개그도 이런 개그가 없다. 정부는 그저께 발표한 ‘2012년 경제전망’에서 내년 물가 상승세가 올해보다 약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물가가 크게 오른 데 따른 기저효과로 보면 숫자상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부 기대대로 서민의 물가 부담이 줄어들지는 알 수 없다. 정부가 지금껏 내놓은 물가안정 약속들은 모두 구두선이 됐는데 또 낙관적 전망을 되뇌니까 하는 말이다. 정말 걱정되는 건 관료들의 안이한 현실 인식 아래 경제가 고물가 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늪으로 점차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홍대선 경제부 정책팀장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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