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 한푼도 늘지 않고 오직 지금 가진 자산만으로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빈곤문제 전문가인 에드워드 울프 미국 뉴욕대 교수가 2001년 미국의 가계수지 추이를 분석해 답을 내본 적이 있다. 소득계층을 5분위로 나눠 분석한 결과, 하위 40%(1·2분위)에 해당하는 가구는 최저생계비(빈곤선) 이하로 지출을 억제하더라도 고작 두달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의 적자가구 비율이 3분기(7~8월) 현재 28.2%에 이른다. 10가구 중 3가구가 적자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는 얘기다. 경상소득으로 적자에 빠지는 가구는 대부분 자산보다 부채가 많다. 이들에게 생존을 위한 유일한 완충장치는 사회안전망뿐이다. 그러나 사회안전망도 취약해 막바지에 이르면 스스로 최소한의 인간적 욕구마저 억제하는 길밖에 없다. 사회·경제적 환경의 악화가 인간의 퇴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사례로는 일본에서 거품 붕괴 뒤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지면서 나타난 ‘초식남 현상’을 들 수 있다. 초식남은 초식동물처럼 나긋나긋한 남자를 일컫는데, 여성에게 적극적인 ‘육식남’과 대비된다. 초식남은 연애에 관심이 없고 결혼을 꺼린다. 일본에선 초식남의 증가에 따른 저출산의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에서도 초식남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다국적 제약회사 릴리사가 발표한 ‘글로벌 성생활 패턴 조사’는 충격적이다. 세계 13개국의 34살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성생활을 물어본 조사에서, 한국이 ‘가장 저조한 성생활을 누리는 국가’로 나타났다. 초식남 증가와 출산율 저하는 우울한 경제상황의 결과다. 또한 미래 경제상황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초식남 증가는 불길한 징조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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