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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한반도 정세를 낯설게 인식하기 / 김종대

등록 2011-12-29 19:17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우주에서 아름다운 지구를 보면
지구인들이 서로 전쟁하고 있는 게
정말 슬프게 생각되는 것이다”
1968년 10월11일, 월터 시라가 아폴로 7호를 타고 우주로 향했다. 그가 지구궤도에 머무른 시간은 11일간. 그때 시라는 육안으로 베트남전쟁을 볼 수 있었다.

“밤이면 소총의 불빛까지 보인다. 베트남 상공에서 깜박깜박 빛나는 걸 보았을 때 번개인가 했다. 그러나 번개의 경우 반드시 구름 속에서 빛난다. 그런데 베트남 상공은 맑았던 것이다. 그래서 전쟁의 불빛임을 알게 되었다. 밤에는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했다. 그게 전쟁의 불빛이 아니었다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때까지 그는 소련을 이기겠다는 냉전의 신념으로 가득 찬 군인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의 야간전투에서 빛나던 섬광이 아름다웠다는 느낌에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체험을 통해 전쟁에 대한 그의 사상과 철학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다음은 그가 미국 주간지 <라이프>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심경이다.

“우주에서 보면 국경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국경이란 인간이 정치적 이유로 마음대로 만들어낸 것일 뿐이고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사이에 두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죽인다. 이건 슬프고도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군인으로 살아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전쟁이라도 그 전쟁에 이르게 된 정치적·역사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 이 지구에 전쟁이 없는 시대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에서 이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위에서 지구인 동료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전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슬프게 생각되는 것이다.”(다치바나 다카시, <우주로부터의 귀환> 중에서)

월터 시라는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조종사다. 그의 동료들이 수없이 희생된 한반도를 우주에서 바라보면서 그는 하염없이 상념에 젖었다. 그리고 귀환한 그는 즉시 군인의 길을 버리고 평화운동가·환경운동가로 변신한다. 그는 향후 30~40년 안에 냉전이 종식될 것이며, 그 이후 언젠가 지구는 ‘민족국가 시대’에서 ‘행성지구 시대’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그로부터 33년 후 냉전이 종식되었다. 월터 시라의 심경이 바뀌게 된 결정적 이유는 우리가 속한 익숙한 세계를 ‘멀리서 낯설게 보았다’는 데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2주가 지난 지금, 통곡의 물결도 잦아들고 있다. 북한 텔레비전에 비친 울음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놓고 논의가 분분하지만, 집단적 카타르시스가 북한 전역을 휩쓸고 간 것만은 분명하다.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이 슬퍼서 울었건, 궁핍한 생활 처지가 서러워서 울었건 간에 주민들의 눈물은 새로운 소통의 수단이자 통제되었던 감정을 분출하는 출구가 되었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장송하며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는 집단적 공감이 확산되는 매우 낯선 풍경이다. 이것이 바로 변화의 길목으로 가는 집단적 통과의례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의미없는 갈등에 피로한 우리의 의식은 월터 시라와 전혀 다른 맥락의 역사인식을 요구한다. 자본주의를 잘 알고, 과거 군사적 도발의 책임과 다소 거리가 있는 김정은과 빈곤 탈출을 갈망하는 북한 주민들은 변화를 지향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아버지들은 죽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들들의 시대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2040세대의 반란은 시작되었다. 권위주의의 아버지 시대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아들들의 시대가 모습을 드러내는 이 시점에, 우리가 큰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면 또 한 세대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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