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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그리움의 트위터 / 안수찬

등록 2012-01-08 19:32

안수찬 탐사보도팀장
안수찬 탐사보도팀장
트위터는 아날로그 세상을 수락 못하는
보통사람들이 그리움을 채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그리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말만 해도 심장에 물기가 스민다. “그리움”이라 말하면, 입안에서 혀가 미끄러지고, 움움대는 음파가 가슴에 울리고, 입술은 수줍게 앞으로 나와 입맞춤의 채비를 차린다. 그리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이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유·민주·혁명·역사보다 연약한 말이지만, 인간 본성을 더 깊이 찌르는 말이다.

소셜미디어 분석가 조엘 컴은 그것을 트위터의 효용과 연관시켰다. “트위터는 그리움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다.”(<트위터-140자로 소통하는 신인터넷혁명>) 처음엔 그 문장을 읽고 속이 불편했다.

예컨대 나는 증조할아버지가 사기그릇에 산처럼 올려주시던 명절날 제삿밥이 그립다. 친구들과 함께 달빛 괴괴한 경주 남산에 오르다 마주친 어두운 밀밭의 은은한 향기가 그립고, 연인과 도시락을 나눠 먹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활엽처럼 찬란한 캠퍼스의 벤치도 그립다. 그런 그리움을 트위터가 채워준다고?

디지털은 1-0, 전부-전무, 예-아니오의 이분법으로 직진한다. 반면 인간의 지성·감성은 무한히 상호작용하는 수천억개의 뉴런 세포 사이를 활공한다. 경험·기억·정보·논리·관점을 엮어 맥락을 형성하는 것이 아날로그다. 인간의 아날로그는 디지털로 표현될 수 없다고 나는 믿었다. 하물며 트위터라니. 140자로 표현되는 삶 또는 세상이란 얼마나 앙상하여 위험할 것인가.

디지털을 경계하던 아날로그 기자는 그러나, 신년기획 ‘2012 트위플 혁명’을 취재하면서 디지털로 구현되는 아날로그를 발견했다. 트위터는 단순하되, 즉각적이며 무한했다. 트위터 세계는 인간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과 흡사했다. 신경세포는 단순한 전기 신호를 즉각적으로 무수히 전파하면서 놀랍도록 풍부한 지성·감성을 만들어낸다. 140자의 트위트 자체는 터무니없이 간단하지만, 무수하고도 즉각적인 전파 과정에서 풍부한 맥락의 아날로그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트위터 사용자들은 더 많은 팔로잉(추종) 관계를 맺으려 애쓴다. 관계가 증가하면 개인이 접하는 맥락은 더 풍부해진다. 맥락은 모든 사소한 것을 구조로 엮어낸다. 트위터에서 일상과 정치의 경계는 사라진다. 밥 사먹고, 물가 폭등에 놀라고, 한국 경제를 비관하고, 정치권력에 분노하는 일이 트위터에서는 동등하게 전파된다. 사용자는 정치 쟁점을 일상에 착근시켜 들여다본다.

그리움은 위로에 대한 동경이고, 위로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한국의 트위터 사용자 400만명은 세계를 바꿀 능력이 없지만, 그것을 수락할 마음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삶의 편린을 드러내어 위로받고 싶어한다. 트위터가 그들을 연결시켰다. 그리움 많은 사람들이 속속 그 세계로 뛰어들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트위터에선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법체계를 비판하면서도 정 전 의원의 폭로가 과연 충분한 근거에 바탕한 것인지, 여러 사람이 따져보고 있다. 그를 북돋거나 폄훼하는 이분법을 넘는 아날로그적 토론이다. 트위터 사용자 개인은 편파적일 수 있지만, 트위터 사용자 전체는 언제나 합리적이다.


기성 언론은 여당과 야당, 검찰과 변호사의 쌍방을 천칭 삼아 정의를 찾는 데 익숙하다. 그것은 종종 이분법에 기초한 앙상한 중립으로 이어진다. 트위터에선 저마다 정의를 재구성하여 전파한다. 트위터의 정의는 역동적이어서 풍부하다. 디지털을 경계하던 아날로그 기자는 최근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트위터의 방식으로 맥락을 드러내는 일에 가담해 보기로 했다. 이 글은 그 계정에 올라가는 첫 트위트가 될 것이다. 말하자면, 나에게도 그리움이 있다.

안수찬 탐사보도팀장 ahn@hani.co.kr, 트위터@egalia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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