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생존권을 위해 싸우던 이들을
감옥에 둔 채로 이루어지는
사면의 정당성이 인정되겠는가
감옥에 둔 채로 이루어지는
사면의 정당성이 인정되겠는가
정부가 설을 맞아 사면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1천명이라고 하는데, 규모를 먼저 정해 놓고 기준을 마련한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것도 졸속일 것 같다. 아마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상황을 막아보려고 꼼수를 쓰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생계형 범죄자를 사면하겠다는 방침에 반대할 생각은 없으나 특별사면을 검토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설 연휴가 1월21일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서, 또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 길을 떠날 것이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차를 달려서라도 가서 가족들을 만나는 날이 설이다. 그런데 그런 날이면 더욱 서글프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잊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 중에 가족들을 감옥에 둔 이들은 서럽다 못해 목이 메고, 가슴이 찢기는 고통 속에 설을 보낸다. 마침 설 연휴 직전 1월20일이 용산참사 3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살기 위해서 망루를 짓고 올라갔던 이들, 결국 망루에서 죽어 내려왔던, 너무도 추웠던 2009년 대한 추위의 그날에 저질러진 야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새벽부터 물포로 망루를 공격하여 망루 안의 철거민들을 동태처럼 얼린 상태에서 컨테이너 박스 위에서 옥상으로 경찰 특공대가 치고 올라가서 진압을 했다. 그러다가 겨울 새벽하늘에 벌겋게 치솟던 화염… 화학소방차도 준비하지 않아서 물만 쏘아대던 경찰들… 그 속에서 농성 중이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그 일로 해서 지금 감옥에는 7명의 철거민들이 구속되어 있다. 이충연·김재호·김대원·김성환은 용산 4구역 당사자로 망루를 올랐다가 구속되었고, 천주석·김창수·김주환은 다른 지역 철거민으로 용산에 연대 나왔다가 구속되었다. 참사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이들이 4년에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벌써 네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반면에 안전대책 없이 강경진압을 지시했던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경북 경주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고, 어느 누구도 용산참사와 관련해 처벌받지 않았다. 아버지를 잃은 그 아들, 그리고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을 잃은 철거민들만 구속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쌍용자동차 한상균 지부장도 여전히 감옥에 있고,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벌였던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수감 중이며, ‘희망의 버스’를 기획했던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도, 비비케이(BBK) 의혹을 폭로했던 정봉주 전 의원도, 한상렬 목사와 많은 이들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을 벌이다 구속된 이들도 여전히 감옥에 있다. 그리고 촛불집회 등에 참가했다는 이유 등으로 벌금형을 받은 수많은 이들은 전과자가 되어 있다.
당연히 비리를 저질렀던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용산참사 구속자를 비롯한 이들을 보라. 이들을 감옥에 둔 채로 이루어지는 사면은 기만이다. 누구보다 먼저 이들을 사면해야 이번 사면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겠는가.
생존권을 박탈당할 지경에 내몰렸던 이들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왜 이 정부는 민중이 극한적인 투쟁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상황으로 그들을 내몰았느냐는 점이다. 용산만 하더라도 용산참사 이후에 비로소 사람들은 재개발 제도와 정책이 저질러놓은 야만에 눈뜨기 시작했다. 온갖 환상과 황금빛 미래를 기약하는 것 같던 뉴타운은 멈춰버렸다. 용산도 그날 이후 개발이 멈추어진 상태로 폐허가 되었다. 이제 3년, 이 시간 동안 철거민과 협상하고 대안을 찾았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 아닌가.
결국 정책적 과오와 공권력의 무분별한 진압 위주의 실력행사가 빚은 비극에 대해 일말이라도 반성하는 의미에서라도 용산참사 구속자 등을 꼭 사면해야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생존권 투쟁을 벌이다가 구속된 이들을 감옥에 그대로 두고 이루어지는 사면은 꼼수로 비난받고,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어서 사회통합을 위한다는 사면의 효과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