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사회부 사건데스크
이들의 성공신화엔 무수한 ‘김군’들의
‘코 묻은 돈’과 시간이 들어 있다
‘코 묻은 돈’과 시간이 들어 있다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권력뿐 아니라 돈을 쫓는 후각도 실로 탁월했던 모양이다. 전임자인 네로가 저질러놓은 난국을 수습하느라 많은 돈을 필요로 했던 그는 공직을 공매에 부치더니 급기야 로마 시내 요로에 공중화장실을 만들고는 용변에까지 최초로 세금을 매겼다. 보다 못한 아들이 아버지의 탐욕에 토를 달자, 황제는 거둬들인 동전 한 닢을 아들의 코밑에 들이대고는 “지린내가 나느냐”고 반문했다. “무얼 팔든 이문에선 좋은 냄새가 난다”는 로마의 격언은 여기서 생겨났다.
이 말을 새삼 떠올린 것은 지난해 12월20일 대구 중학생 김아무개군의 죽음을 접하고서다. “게임에 쓴다면서 제 통장의 돈까지 가져갔고,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게임을) 키우라는 양은 더 늘고, 때리는 양도 늘고.” 김군은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날 한밤중까지도 “게임 빨리 안 하나”라는 가해 학생의 독촉 문자를 받았다. 최근 경기도 여주에서 발생한 일진회 사건 가해 학생들의 폭력의 동기도 “피시방 등에 갈 돈을 마련하느라”였다. 온라인 게임과 피시방이 빚어낸 그간의 사건 목록을 열거하기엔 지면이 비좁다.
그사이 온라인 게임 업체의 창업주들은 차례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김군의 유서에 나오는 그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넥슨 김정주 회장은 김군 사건이 터지기 일주일 전, 평가액 3조원을 넘겨 국내 주식부자 3위에 등재됐다. 그보다 더 큰 부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뿐이다. 넥슨과 업계 선두를 다툰다는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사장도 개인 재산이 1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숱한 언론과 호사가들이 앞다퉈 칭송해온 이들의 성공신화-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와는 딴판인-엔 기실 무수한 ‘김군’ 또래들의 ‘코 묻은 돈’과 천금 같은 시간이 들어 있다. 게임 부자들이 차곡차곡 부를 쌓는 동안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져든 청소년이 줄잡아 57만여명(2010년 한국정보화진흥원)에 이르고,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최소 1조7000억원에서 최대 5조원(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을 헤아리게 됐다.
더욱이 인터넷 게임 중독자의 뇌신경 메커니즘이 마약 중독자의 그것과 같다는 연구 결과(2009 분당 서울대병원)는 게임 중독이 이용자 개인의 무절제나 탐닉에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중증 질환임을 보여준다.
물론 게임업체들은 ‘우린 그저 서비스만 할 뿐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소비자의 몫’이라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이들 업체가 출연해 만든 게임문화재단은 게임 ‘중독’ 대신 ‘과몰입’이라는 용어를 쓴다. 상품이 낳는 해악과 그 제조에 따른 책임을 분리하려는 기업들의 이 전형적인 논리는, 그러나 이미 ‘제조물 책임’(Product liability)론 앞에서 무색해진 지 오래다. 담배회사에 폐암 유발의 책임을 물어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령한 미국 법원의 판결도 제조물 책임론에 법리적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가 돈의 ‘냄새’를 불문하는 천민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면, 게임의 유해성이 마약 못지않은 지경에 이르렀다면, 게임업체들에도 더 늦기 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온당하다.
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가렴주구로 긁어모은 돈을 자기 가문의 원형극장 ‘암피테아트룸 플라비움’(콜로세움) 건립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지금 와서 2000년 전 그의 의도를 가늠할 길은 없지만, 피가 튀고 살점이 뒹굴던 이곳에서의 게임은 날로 역치를 높여가며 로마인들의 공공의식과 상무정신을 허물어뜨렸고, 결국 제국의 쇠망을 부르는 촉진제가 되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강희철 사회부 사건데스크 hckang@hani.co.kr
강희철 사회부 사건데스크 hck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