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일본에선 보수로 분류되는 매체도
북한의 지도부 교체를 현안 타개의
기회로 삼자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북한의 지도부 교체를 현안 타개의
기회로 삼자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한반도 관련 주요 국가에서 선거와 권력교체가 행해지는 격동의 2012년이 밝았다. 이 글이 실리는 14일에는 대만 총통 선거가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양안 관계는 물론 중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도 크게 영향받게 됨은 물론이다. 지난해 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한반도 상황의 불투명성이 높아진 가운데 주변 각국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일본의 반응을 보면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납치문제로 인한 반북 여론을 고려할 때,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들에 흥미 본위 보도가 넘친 것은 어쩌면 예상한 대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초기부터 “상황 안정”과 이를 위한 “관계 모색”에 중점을 둔 논조가 일본 정부와 주요 언론의 흐름을 형성해 간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전기를 맞이해서 감정보다 국익을 중시하는 ‘실용외교’의 한 예를 보는 느낌이었다.
1월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나카이 히로시 의원(전 납치문제담당상)이 중국에서 북한의 송일호 북-일 교섭 담당 대사와 ‘극비접촉’을 했다. 일본 정부는 즉시 나카이 의원의 “개인적 행동”이라고 공식성을 부인했다. 나카이 의원은 지난해 7월에도 송일호 대사와 중국에서 만난 사실이 있으며, 이번에도 내각부 납치문제대책본부 직원이 동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번 접촉 사실을 특종보도한 <교도통신> 기사에는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이 “총리관저 관계자”로 되어 있다. 한 의원 개인의 돌출행동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정황증거들이 적지 않다. 북한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한·미·일 공조”를 표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독자적인 대북접촉을 노골적으로 취하기는 어렵다. 일본 정부와 연계된 다양한 비공식 채널을 통한 정보수집과 교섭 가능성 타진 작업의 일환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언론에 흘린 것도 여론 형성을 위한 애드벌룬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19일 오후 일본 후지무라 관방장관은 회견에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사전협의가 없었던 한국 정부가 불만을 표시했다고도 한다. 논란이 일자 정부 차원의 공식 조의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의도적이고 계산된 발언임은 분명한 듯하다. <요미우리신문>(2011년 12월22일치) 보도를 보면, 일본 정부 안에도 조의 표명에 신중론이 있었지만 “납치 피해자의 안전 확보를 위해 북한에 메시지를 보낼 것을 고려했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본 언론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수로 분류되는 언론매체에서도 북한의 지도부 교체를 납치문제 등 현안 타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대북 강경론의 중심인 아베 전 총리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북한과 물밑접촉을 해온 오랜 경험이 있다”면서 당파를 초월한 협력 의사를 밝힐 정도였다. 미국도 김정은 신체제를 사실상 인정하면서 뉴욕 채널을 통해 북-미 접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보도된 바이다.
“한·미·일 공조”란 말을 되풀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 토대 위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국익과 당사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외교를 전개하는가가 중요한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김정은 신체제는 자신의 안정을 위해 중·러는 물론 미·일에 대해서도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겠지만, 한국과의 국지적인 긴장은 체제 결속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대북정책의 큰 전략적 틀을 가지지 못한 채 내부 대립에 흔들리는 한국 외교의 현상이 안타깝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이슈김정은의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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