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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남성, 혹은 2등 여성

등록 2012-02-01 18:12수정 2012-02-01 18:14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성적 표현의 자유가

성립되려면 그 혜택을

여성·남성이 차별 없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대표로 있는 회사 이름에 담긴 ‘붕가붕가’라는 단어는 속어로 성교, 좀더 구체적으로는 항문성교를 지칭하는 말이다. 처음 회사 이름을 지을 때는 개나 고양이의 자위 행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저런 뜻임을 알고 난 이후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성적인 어감을 가진 단어를 공공연히 얘기하는 게 금기를 깨고 표현의 폭을 더 넓혀 모두들 거침없이 성적인 표현을 구사할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궁극에는 성행위와 그에 관련된 신체부위를 왈가왈부하는 걸 몹쓸 것으로 여기는 성적인 엄숙주의를 타파하여 만민이 자유롭게 성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정봉주 전 의원의 구속에 항의하는 시위의 일환으로 한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자신의 가슴 위에 메시지를 적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그런데 <나는 꼼수다> 진행자들이 이를 정 전 의원의 성적인 위안과 연결시켰다. 이에 다른 여성 지지자들이 문제를 삼았고, 이를 역으로 비판하고 나선 이들이 나타났다. 대부분 남성으로 추정되는 그이들은 가볍게 웃자고 한 얘기에 왜 도덕군자인 양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며 답답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나체 시위나 ‘슬럿워크’(잡년행진) 같은 외국 선진 사례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들 논리의 근거를 이루는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다.

그런데 성적 표현의 자유가 온전하게 성립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그 혜택을 여성과 남성이 차별 없이 고루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성적인 농담을 할 때 자신을 성적인 물건 취급하는 음담패설을 일삼는 남성 직장상사들을 연상하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 더 나아가 여성이 인간으로서 갖는 가치를 성적인 매력으로 귀결하는 사고방식이 사라져야 하고 여성이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동등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는 이러한 전제조건을 충족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녀’들이 있다. 어느 인터넷 카페에 ‘똥을품은배’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라는 글이 대변하고 있는 그녀들은 길거리로 나서서 진보적인 정치 행동을 하는 동안 남성들에 의해 (혹은 심지어 자기 스스로에 의해) 주체가 아닌 객체로 대상화됐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경험의 아래층에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었던 차별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분명 농담을 하려 한 것이겠지만, 그 의도와 상관없이 <나꼼수> 진행자들이 보인 행동과 태도는 성을 매개로 한 대상화의 논법을 구사함으로써 그 차별의 기억들을 호출해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남성들이 바탕에 깔린 경험의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그녀들의 비판을 쓸데없이 민감한 것으로 치부하는 순간, 이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 본 경험이 없는 나를 비롯한 대다수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이 사회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깨닫기 힘들다. 오히려 자칫 가해자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그게 힘들다면 최소한 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훈계’가 아닌 ‘경청’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녀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남성인 우리가 보기에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남성이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한 여성 선배가 “여성에 대한 차별 문제를 이해하는 데서 남성은 2등 여성일 뿐”이라고 말했던 것, 나는 언제나 마음속 깊숙이 새기고 있다. 고건혁/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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