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 소장
1800년대 말부터
거대 독점기업들에
고삐를 채우는 데만
수십년이 걸렸다
거대 독점기업들에
고삐를 채우는 데만
수십년이 걸렸다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에는 철강, 철도, 석유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소비재인 위스키, 설탕, 담배, 가축 사료, 철사못, 양철, 성냥, 육류, 우유 등 거의 모든 상품 영역에서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 형태인 트러스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에 따라 무수한 소규모 기업들이 번성하던 초기 경제발전 단계에서 대량생산으로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소수 대기업 체제로 시장 구조가 재편됐다. 그 결과 1904년에 이르자 300여개의 거대 트러스트들이 미국 전체 산업자본의 3분의 2를 통제하고 미국 주요 산업들의 5분의 4를 영향권 아래에 두게 됐다. 이들은 정부와 정치인들을 매수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1880년대 이후 이들 독점 트러스트들을 견제하거나 해체하려는 주 및 연방 정부 차원의 시도가 일어났다. 그 결과 1890년 셔먼 반독점법이 탄생했고 1911년 미국 연방정부는 당시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차지했던 스탠더드오일을 30개 회사로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미국 담배시장의 95%를 장악했던 아메리칸토바코를 16개 회사로 분리했다. 1914년에는 셔먼법을 보완해 경쟁을 제한하는 가격차별을 금지하는 등의 클레이턴법이 제정됐고, 연방공정거래위원회가 설립됐다. 이어 대공황을 거치면서 은행, 증권, 보험 간의 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글래스-스티걸법과 증권거래법 등을 통해 금융규제의 틀이 완성됐다. 또한 1936년에는 개인 소매업자들을 대형 체인스토어 사업자로부터 보호하는 로빈슨-패트먼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던 독점 대기업들이 점차 정부 규제 틀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1800년대 말부터 대공황 이후까지 거대 독점기업들한테 고삐를 채우는 데만 수십년이 걸렸다. 이후 미국은 민간과 정부의 역할이 명확해지고 정부의 권위와 규제권한이 확보됐다. 이때 마련된 규제 체계 속에서 상당수의 독점기업들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날강도 귀족들’(robber barons)이라고 불렸던 철강산업의 카네기와 석유산업의 록펠러 등 창업주들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이후 미국 경제는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주주자본주의로 빠르게 진화했다. 이와 함께 20세기 전반까지 극단적으로 벌어졌던 빈부격차도 완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경제는 빠른 성장과 함께 빈부격차가 크게 축소되고 대다수가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대압착(Great Compression)의 시대’로 나아갔다.
일본의 재벌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해체됐다. 한국 재벌들의 원조 격인 일본의 재벌들은 미군정을 거치면서 오너 가족이 소유한 지분 등을 몰수당하고 경제계에서 추방됐다. 이렇게 해체된 일본의 재벌들은 이후 기업집단이라는 형태로 바뀌어 느슨한 협력 체제를 유지하지만,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기업구조가 확립됐다. 1990년대 이후에는 그나마 기업집단 체제마저 유명무실해져 미쓰비시 정도가 기업집단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2차 세계대전까지 급속히 성장했던 카르텔과 콘체른과 같은 독점기업들이 전쟁 이후 연합군에 의해 해체되고 공정경쟁 질서가 확립됐다. 일본과 독일도 독점 대기업들을 해체해 건전한 경제구조를 만든 고속성장의 초석을 닦았다.
최근 여야 정치권에서 재벌개혁 논란이 뜨겁다. 당장 재벌개혁을 추진하면 반발도 따르고 일정 기간 동안 한국 경제가 동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지속적인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100년 전 미국이 치렀던 거대기업과의 전쟁, 한국도 해야 하는 이유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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