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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상대 없는, 범죄와의 전쟁 / 임범

등록 2012-02-13 19:23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한국 영화는 왜
국가 시스템과의
대면을 피해가는
길을 찾아갈까
<범죄와의 전쟁>을 봤다. 디테일, 연기, 연출 모두 좋았다. 하지만 영화의 재미, 완성도와 별도로 내겐 나만의 남다른 기대가 있었는데, 그걸 충족시켜주지는 않았다. 영화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내 기대는 제목 때문에 생겼다. ‘범죄와의 전쟁’은 공권력과 조직폭력배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공권력이 ‘전쟁’의 한 당사자니까 이 영화는 검찰, 경찰, 청와대 등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다루겠구나, 그게 나의 기대였다. 지금까지 공권력을 제대로 다룬 한국 영화가 몇편이나 될까. 대체로 이야기에서 배제하거나,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오더라도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변화할 여지가 없는 고정변수로 취급해오지 않았나.

공권력을 고정변수로 삼는 대표적인 장르가 조폭영화다. 특히 한국의 조폭영화는, 학창 시절의 문제아를 다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텍스트의 확대복사판에 가까웠다. 조폭영화에서 공권력은 <우리들의…>에서의 학교 당국과 같은 존재다. 정작 폭력의 씨앗은,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학교에 있는데 그 누구도 학교와 맞장뜨지 못한다. 조폭영화에서 공권력은, 개인이 감히 맞장뜰 수 없는 더 큰 폭력이다. 그 아래서 자기들끼리 살겠다고 아등바등대다가 비극을 맞는다.

<범죄와의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조폭과 한통속이 돼 조폭과 권력 사이를 중개하던 한 브로커(영화 속 표현으로 건달 아닌 ‘반달’)의 고군분투기인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공권력은 맞장뜰 수 없음은 물론이고 타협 불가능한 고정변수가 된다. 그리고 영화는 배신이 배신을 낳는, 익숙한 조폭영화의 길을 간다. 이런 텍스트가 군사정권 시절 폭력적·가부장적 국가 권력 아래서의 삶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데에 유효할 수 있다. 그럼 범죄와의 전쟁 이후엔 권력과 조폭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영화는 여기에 정색하고 답하지 않는다. 대신 에필로그처럼 짧게 이어붙인 몽타주 화면을 통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정말 그런가.

바뀐 시대를 다루면서도 공권력을 고정변수로 취급하는, 가까이 다가가 디테일을 살피기보다 멀리서 바라보면서 국가 공동체의 시스템을 음모 집단, 혹은 기득권끼리 짜고 치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그리는 경향은 잘 바뀌질 않는 듯하다. <부러진 화살>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재판이 문제투성이인데, 그걸 다룬 언론의 보도는 갑자기 언론사 간부의 지시로 나가지 못한다. 왜 그랬는지, 더 이상의 설명이 없다. ‘권력의 압력이 있었겠지’ 하고 미뤄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08년에, 얘기가 되는 기사를 사법부에서 뭐라 그러면 신문사나 방송사가 빼줄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상상일까.

할리우드 영화는 상업영화라도 공동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위기가 닥치면 그걸 관리할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작동하지 않으면 그 원인이 뭔지, 그걸 해결할 자정능력이 있는지, 없을 땐 그걸 대체할 역량이 그 공동체 안에 있는지 등을 따져 묻는다. 그 일련의 질문들이 스토리를 이룬다. 영웅도 그 과정을 통해 나온다. 이와 달리 한국 영화는 국가 시스템과의 대면을 피해가는 길을 찾아가는 듯하다. 왜? 한국 국가 시스템이 워낙 엉망이어서? 관객 누구도 그 시스템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기득권끼리 짜고 치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한국 아니냐고?

글쎄….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아니면 이 정부가 워낙 국민들을 성질나게 해서일까. 여하튼 삶은 개인과 공동체의 만남이고, 공동체는 시스템을 통해 만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을 피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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