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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맬컴 엑스 / 박순빈

등록 2012-02-21 19:05

2008년 12월 미국 뉴욕의 할렘가에는 맬컴 엑스와 버락 오바마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렸다. 맬컴 엑스의 꿈이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 등극으로 부활한다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상징은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1950~60년대의 흑인 민권운동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여러가지 법과 제도를 낳았다. 흑인의 정치적 권리가 높아졌다. 마틴 루서 킹 목사와 같은 흑인 인권운동가를 국가적 영웅으로 받들기도 한다.

그러나 흑인의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퇴락은 멈추지 않고 있다. 2010년 기준 미국의 흑인 빈곤율은 35.7%로 백인의 3배, 실업률은 17%로 2배에 이른다.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대의 남성 가운데 흑인의 수감률은 백인 남성의 그것보다 8배나 높다.

미국의 흑인사회에 정신적 물질적 고난을 강요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식 시장경제가 흑인과 소수인종에게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사회학자들은 피부색으로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사회적 인식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진단한다.

반세기 전 맬컴 엑스는 ‘흑백의 조화’를 거부했다. 위선이며 사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백인 중심의 국가에 대한 비타협적인 공세와 즉각적인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무하마드 알리가 노래를 잘 부르지만 헤비급 챔피언이 되는 데 노래가 무슨 도움이 되었나. 주먹을 잘 휘둘러서 챔피언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 따위의 노래를 멈추고 ‘당장 (국가에) 한방을 먹이자!’고 외쳤다.

그가 꿈꾼 세상은 정치·경제적으로 독립한, 그리고 이슬람으로 뭉친 흑인 민족주의 국가였다. 맬컴 엑스는 뉴욕 맨해튼의 한 거리에서 연설을 하다 총알 세례를 받고 치열했던 삶을 마감했다. 어제는 그가 죽은 지 만 47년이 지난 날이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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