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올레길 6코스는 아름답지만 길다. 쇠소깍에서 출발해 정방폭포를 거쳐 삼매봉 기슭에 도착하면 파김치가 된다. 해발 150m에 불과하지만 아득히 높다. 그 너머가 종착지 외돌개! 25년 전 신혼여행 추억의 힘으로 오른다.
그때 가이드였던 택시기사는 절대 지존이었다. ‘남는 건 사진뿐!’ 그의 지시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시키는 대로 자세를 취해야 했다. 위험천만한 벼랑 끝에서 가슴을 졸였던 곳이 바로 그 외돌개 전망대였다. 포토라인으로 다가갔다. 낯선 안내판이 있다. 결(決)7호 작전.
패색이 짙어지던 1945년 2월 일제의 어전회의. 고노에 총리는 일왕 히로히토에게 사실상 항복을 뜻하는 화평의 결단을 건의했다. 그러나 히로히토는 “다시 한번 전과를 올린 후에 결단해도 늦지 않다”며 거부했다. 그 뒤 일본방위총사령관은 이른바 결호작전을 성안한다. 연합군의 상륙이 유력한 본토 6곳과 본토 밖 1곳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는 작전이다. 1호는 홋카이도였고, 7호는 제주도였다.
일본열도 남단 규슈와 중국 남부를 연결하는 일직선상에 놓여 있고, 필리핀과 한반도를 잇는 중간에 자리잡은 제주도는 미국과 중국, 일본 3국의 전략 요충지였다. 일제가 송악산 인근에 건설한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난징 등 남중국 포격의 전진기지였다. 이런 제주도가 미군에 넘어가면 일제로선 대륙으로부터의 물자 공급 및 관동군 퇴로가 차단된다. 일제의 전쟁 수행 능력은 괴멸할 위험이 커진다. 반면 미군으로선 제주도의 해·공군 기지를 장악하면, 일본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다.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이 임박한 3월, 일제는 각군 작전주임 참모회의를 통해 결7호 작전 계획을 확정, 시달했다. 미군이 오키나와 본섬에 상륙한 4월, 결7호 작전을 수행할 58군이 구성됐다. 3개 육군사단, 1개 혼성여단 7만5000여명의 병력이 배속됐다. 제주도 전역은 주진지대, 공격준비진지대, 유격진지대로 나뉘어, 수백개의 진지와 거점이 들어섰다. 섬 전체가 본토 방어의 총폭탄이었다.
오키나와에선 일본군의 결사항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7월까지 계속된 이 전투에서 미군 1만2000명, 일본군 6만5000명 그리고 민간인 22만여명이 죽었다. 민간인은 대다수 류큐 원주민이고 한국인 징용자 1만여명도 포함돼 있었다. 일본군은 미군한테 죽임을 당하느니 깨끗하게 사라지자(옥쇄)고 원주민을 내몰았다. 주민들은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이웃이 이웃을 살육해야 했다. 거부하면 학살당했다.
오키나와가 함락되자, 제주의 58군은 서남부에 화력을 집중했다. 해상특공병력을 증강하고, 해안 절벽엔 동굴진지를 구축했다. 합판으로 만든 배에 250㎏의 폭약을 싣고, 연합군의 상륙정에 돌진해 자폭하는 특공 진양정의 격납고였다.(진양정은 천안함 침몰 때 수구언론이 지어낸 인간어뢰의 원형이다.) 삼매봉엔 119진양대(일명 다나카 부대)가 있어 187명의 대원이 외돌개 주변 12개 동굴진지에서 자폭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키나와 대살육의 암운은 제주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두 방의 원자폭탄에 놀란 일제가 돌연 항복했기에 망정이지, 제주도는 참극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모두가 제주도의 전략적 중요성 탓이었다.
외돌개는 올레길 6코스의 종착지이자 7코스의 출발점이다. 외돌개 국민관광지를 뒤로하고, 벼랑길을 따라 7코스로 들어서면 멀리 문섬이 연꽃 모양으로 떠오르고, 구럼비 바위가 아지랑이처럼 아른댄다. 미사일방어(MD) 체제를 갖춘 이지스함 기지가 들어선다는 곳이다.
내일부터,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라는 주제로 국제연대행사가 제주도에서 열린다. 세계의 150개 평화단체가 참여하는 ‘우주 무기 및 원자력 반대 세계네트워크’가 주관한다. 브루스 가뇽 사무총장이 워싱턴의 한국 공관에 전화를 걸어 강정마을 주민의 투쟁에 지지를 전하려 하자, 이런 대꾸가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에게 전화하지 말고 미국 정부에 전화하라. 해군기지를 요구하는 건 그들이니까.” 일제가 본토 방어용 총폭탄으로 만들었던 제주, 이젠 해방된 조국이 미·일의 본토 방어에 이용될 수 있는 기지로 구축하려 한다니, 제주의 운명은 왜 이리도 가혹한가.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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