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남북이 적대감만 쌓인 분단시대에
3·1운동은 남북 동질성을 가장
확고히 할 수 있는 민족사의 대사건
3·1운동은 남북 동질성을 가장
확고히 할 수 있는 민족사의 대사건
3·1운동 93주년에 즈음하여 남북 8000만 겨레에게 한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앞으로 6년 뒤면 3·1운동 100주년을 맞게 된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하다. 100주년을 앞두고 남북이 함께 3·1운동 관련 모든 사료를 모아 100권 분량의 총서를 만들자.
3·1운동은 남북 동질성을 가장 확고히 할 수 있는 민족사의 대사건이다.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체성이고 법통이기도 하다. 분단 반세기가 훌쩍 지나면서 혈연공동체와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공동체 외에는 달리 동질성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전쟁과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적대감만 켜켜이 쌓이게 되었다. 민주정부 10년간 화해정책으로 모처럼 동질성이 회복되는 듯하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악화되고 연평도 포격사건까지 일어났다.
아무리 ‘수구꼴통’이라도 내놓고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당장 통일이 쉽지 않고 이명박 정부 남은 1년 안에 남북관계가 풀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말이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남북의 학계나 연구기관 또는 민간단체가 ‘남북 3·1운동총서 편찬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자료 수집을 하고 공동편찬했으면 한다.
몇해 전 ‘단재 신채호 선생 전집’ 자료 수집과 공동편찬 작업을 협의하고자 평양에 갔을 때 그곳 학자들에게 물었다. 3·1운동 관련 사료가 잘 보존되고 있느냐고. “6·25 전쟁기에 재판기록 등이 미군 폭격으로 많이 소실되었지만 상당히 보존돼 있다”고 했다. 함께 자료집을 내면 어떻겠느냐 했더니 연구해보자는 답변이었다.
분단시대 독일은 1960년대부터 대표적인 반나치 극작가 브레히트의 전집을 동서독 출판인들이 공동으로 편찬작업을 시작하여 통일이 된 뒤에 완간하였다. 독일이 통일되기까지에는 게르만 민족의 동질성을 찾으려는 이런 노력들이 있었다.
3·1운동은 한민족의 위대한 역량이다. 국치 9년 만에 세계 식민통치사상 유례가 없이 혹독한 일제의 무단통치를 뚫고 비폭력저항에 나선 것이 3·1운동이다. 친일매국노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민이 일체가 되어 시위에 나섰다. 신분·계층·지역·종교를 가리지 않았다. 독립선언서의 인쇄 과정에서 총독부 형사에게 현장이 발각되었지만, ‘동포애’를 들어 설득하자 눈감아주었다. 형사는 뒷날 일제에 의해 처형되었다.
3·1운동은 남북 가리지 않고 전개되었다. 당시 2000만 국민 중 200만명 이상이 시위에 참가하고 밝혀진 집회 횟수가 1542회였다. 전국 방방곡곡이란 이런 때 쓰인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1919년 3월1일부터 5월 말까지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정한경의 <조선사정>은 사망 7645명, 부상 4만5562명으로 집계했다.
한민족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일제식민통치를 거부하는 만세시위를 벌였다. 15살 소녀에게 일경이 “누가 시켜서 만세를 불렀느냐”고 문초하니, “새벽닭도 누가 시켜서 우느냐”고 따질 정도로 3·1운동은 강력한 한민족의 독립자주정신을 보여주었다.
3·1정신의 회복이 시급하다. 3·1만세나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친 선열들은 독립된 나라가 분단되거나 사대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3·1정신의 회복을 위하여 거듭 제안한다. 남북이 함께 3·1운동 사료를 모아 총서를 만들자. 그런 과정에서 동질성을 찾게 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3·1운동 연구는 비교적 충실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중앙 중심이고 지방사나 해외, 재판기록과 번역사업 등은 묻힌 상태다. 3·1운동 100주년에 100권의 총서를 편찬하여 관계자들이 사적지를 돌면서 헌정하는 꿈을 그려본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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