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이 정도면 격문이다. 분노와 한숨이 문장마다 절절이 배어 있다. 지난 28일 발표된 야권연대 비상시국회의 발표문 얘기다.
“총선압승과 정권교체, 이대로 물건너가는 것인가? 또다시 이름만 바꾼 새누리당 치하에서 지긋지긋한 5년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두 야당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비상시국회의에는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에 참여한 진보 성향 시민사회 원로들이 주로 참석했다. 이들의 피맺힌 절규를 반대편에서는 정치 개입으로 비판할 수 있다. 시민사회가 정치 협상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격정과 분노는 정당하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상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사자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태도가 뜨뜻미지근하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우려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협상이 공식적으로는 결렬됐지만 물밑에서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가? 그렇다면 협상의 내용을 국민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 ‘(중재가) 필요하면 요청드리겠다’는 것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끼어들지 말라는 오만한 태도다. 지금까지 알아서 한 결과가 협상 결렬인가? 통합진보당도 자신들의 잘못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은 채 민주통합당의 ‘승자독식’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뿌리부터 다른 정당이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모든 지역구에 정정당당하게 후보를 내서 유권자들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상대는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이다. 만화영화에서도 괴물과 싸우려면 합체 로봇으로 변신해야 한다. 야권연대의 명분은 새누리당에서 나온다.
새누리당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 세력이 만든 민정당에서 출발했다. 1990년 3당 합당에서, 부산·경남에 지역 기반을 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개혁적 보수’ 세력, 김종필 전 총재로 상징되는 충청 중심의 ‘유신 잔당’이 가세했다. 기득권-보수-영남이 결합한 카르텔이 탄생한 것이다. 명백한 역사의 퇴행이다. 그 뒤 ‘유신 잔당’은 떨어져 나갔고 1996년 총선과 1997년 대선을 거치며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안상수, 조순 등 전문가 그룹과 민주화 운동 세력 일부가 들어갔다.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이다.
이런 곡절을 거쳐 새누리당은 친일파·친미파 등 외세 의존 세력, 군사 쿠데타 세력, 독점재벌 세력 등 대한민국 기득권 세력이 한데 뭉친 괴물로 성장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해 18년 동안 철권통치를 휘두른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지금 이 정당을 이끌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처럼 막강한 상대를 일시적이나마 쓰러뜨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은 기적이었다. 올 12월19일 대선에서 야당이 새누리당을 이긴다는 것도 역시 기적에 가깝다. 기적을 실현하려면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째,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 둘째, 대선에서 박근혜 위원장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셋째,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 협상이 결렬됐다는 것은 첫 번째 문 앞에서 주저앉았다는 얘기다.
[관련 영상] 한겨레TV ‘정치와이파이’ 2회…‘부러진 야권연대’ 협상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선거에 나서는 당사자들은 정권교체보다 자신의 국회의원 배지가 더 소중하다. 야권 단일후보가 안 되면 무소속으로 출마하려고 할 것이다. 후보들로서는 이번에 어떻게든 출마를 해야 지역구에 포스터를 붙여 얼굴을 알리고, 2년 뒤 지방선거든, 4년 뒤 총선이든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각 정당 대표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시간도 없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직접 만나 신속히 합의하고, 그 뒤에는 자기 당 소속 후보들을 설득해서 주저앉혀야 한다. 필요하면 대표직을 포함해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 그 정도 의지와 리더십이 없다면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 옳다. 야권연대에 실패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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