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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권한과 절제 사이 / 강희철

등록 2012-03-06 19:24

강희철 사회부 사건데스크
강희철 사회부 사건데스크
노정연씨 의혹은
애초 푸닥거리하듯
떠들썩하게 수사할
사안이 아니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그려진 페리클레스의 모습은 수도승의 그것과 흡사하다. 아테네 민주정의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그이지만, 신변 관리에선 찬바람이 일 지경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권좌에 오른 뒤) 생활 방식도 즉시 바꾸었다. … 어떤 저녁 식사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고, 그런 종류의 즐거운 모임은 모두 포기했다. 정계에 몸담고 있던 기나긴 세월 동안 그는 저녁을 먹으러 친구 집에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1드라크마(그리스의 옛날 화폐 단위)도 늘리지 않았다.”

그의 치세는 우연한 기회의 산물이 아니라 단호한 결단의 소산이었던 셈인데, 2500년 전 그가 보여준 처세를 간과한 나머지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배’ 권력자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 점에선 우리도 예외가 되지 못했으니, 가장 가까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호의적’이라고 믿었던 사적 인연을 끊지 못해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가 생을 마감한 뒤 남겨진 미완성 회고록-<성공과 좌절>이란 이름으로 출간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수신제가라는 말에 대해서는, 왜곡을 피해야 할 것이지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변 관리는 정치인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털어도 먼지 안 나게 살아야지요. … 사법 절차의 결정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자책골을 넣은 사람에 대한 처분은 여러분이 할 것입니다.”

추상적이긴 해도, 노 전 대통령은 이 짧은 글에서 그다운 어법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있다. 요즘 들어 검찰이 새삼스럽게 문제 삼고 있는 그의 딸 노정연씨의 미국 뉴저지 고급 아파트 구입 의혹도 실은 이 ‘자책골’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대검 중수부는 이미 2009년에 노씨를 불러 이 문제를 조사했었다.

물론 일부 검사들의 투박한 정의 관념에서 보면, 10억원 넘는 돈이 대체 어디서 나서 미국에 그만한 아파트를 구입하려 했는지 전모를 파헤쳐보고 싶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던 2009년 1월에 송금이 이뤄진데다, 노정연씨가 직장 생활을 길게 하지 않았고, 그의 남편 곽상언씨도 2004년 변호사로 개업해 법조 경력이 짧은 사실 등을 고려하면 의심은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자금의 출처가 노 전 대통령을 보고 건넨 부정한 돈으로 드러난다 해도, 이제 와서 그의 딸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법적 방도는 딱히 없다.

이런 사정을 두루 헤아려 보면, 애초에 이 의혹은 푸닥거리하듯 떠들썩하게 수사할 사안이 아니었다. 주로 ‘거악’을 상대한다는 대검 중수부가 나설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참고인에 불과한 미국 시민권자(아파트 주인)에게 소환 통보한 사실을 공개하고, 그동안 누구누구를 조사했다며 진술 내용까지 소상히 알려주는 ‘과잉 친절’을 베풀었다. 불과 얼마 전 돈봉투 사건 수사 때 ‘피의자 김효재’의 소환 계획조차 함구하고, 압수수색도 과감히 생략했던 태도를 떠올리면 어리둥절해질 정도다. 어느 전직 대검 중수부장은 이런 이중성이 당연하다는 듯 ‘홈(여권) 어드밴티지’라는 희떠운 농담을 던졌다는데, 축구팬들이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검찰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은 지난해 11월 외부 기관에 맡겨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공개 여론조사 결과를 일선 검찰청에 내려보냈다. 이 대외비 자료에는 ‘검찰의 신뢰 향상을 위해 우선적으로 노력할 과제’를 묻는 설문에 1·2순위 응답자를 합친 50.1%가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를 꼽았다고 돼 있다. 요즘 검찰의 행보를 보면서, 이 여론조사는 뭣하러 한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강희철 사회부 사건데스크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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