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보수의 복지와 진보의 복지 중에
어느 것이 ‘진짜’ 복지인지를
감별하는 지혜, 그것이 절실하다
어느 것이 ‘진짜’ 복지인지를
감별하는 지혜, 그것이 절실하다
바야흐로 정치의 복지시대, 복지의 정치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4·11 총선이 다가오면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겠다는 이들이 동네에 걸어 놓은 펼침막에 ‘복지’라는 용어는 쉽게 눈에 띈다. 당을 가리지도 않는다. 하기야 이러한 조짐은 벌써 시작되었다. 재작년 하반기 무렵 복지포퓰리즘 논란이 일기 시작하였는데 박근혜 의원이 복지를 천명하고 공청회도 열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진보진영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아, 이제 보수도 복지의 시대정신을 받아들이는구나….’
거대한 파장이 일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있었다. 보수진영이 생각할 수 있는 복지정책의 최대치가 어디까지인지 몰라도 그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뜻 믿기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는 표현을 쓴 것에 그 근거를 두기도 했고, 보수도 복지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망국적 위기를 돌파할 수 없기에 복지에 대한 과감한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난 2월엔 새누리당이 ‘국민과의 약속’을 통해 좀더 정비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약속 중 첫번째가 ‘모든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복지국가 건설’이었다. 한국에서만 유독 좌파적 용어 또는 한물간 용어로까지 힐난되어온 복지국가라는 말을 쓴 것도 파격이었지만, 그 내용도 보편적 복지에 대한 관대한 수용이 있어 자못 기대 이상이었다. 지금은 총선을 맞아 복지를 포함한 세부공약을 내놓기 위해 분주한 모양이다. 현재로서 새누리당이 제시할 복지국가의 제언이 결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아닐 것이 확실하다.
분명 복지가 진보의 전유물은 아니다. 서구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보면 사회적 위기 앞에서 보수가 오히려 새로운 복지제도를 창안하기도 하였고 진보진영의 막연한 복지담론을 현실정책으로 구현한 경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보수가 과연 서구 사회의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박근혜표 복지’가 시대정신인 복지국가의 실현을 진정으로 선도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 국민들은 보수도 진보도 모두 복지를 전개할 것이기에 그저 꽃놀이패를 즐기면 된다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첫째로, 복지국가의 기본 가치는 사회권에 대한 시민권적 인식이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천부적 권리를 누구나가 인정하는 것이다. 인권의 암흑시대를 열었던 독재자의 혈연적·정신적 유습을 탈피한다는 뼈를 깎는 성찰이 보이지 않는 한 복지국가 시대를 열 자격을 인정하기 어렵다.
둘째로, 박근혜표 복지에 단골 메뉴인 ‘맞춤형’이란 용어가 갖는 부적절함이다. 이는 결국 개인의 위험상황을 하나하나 진단하고 이에 대응하겠다는 것인데, 진정한 보편적 복지의 핵심은 위기의 가능성을 인구사회학적 계층이나 집단 전체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위기는 우리 사회의 생산 및 분배 체제의 결함에서 오는 것이고 그렇기에 개별적 맞춤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너무 편협하고 불완전한 접근이다.
셋째로, 적극적 복지국가는 생산 현장에서 자본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게 필수다. 과연 경제성장의 신화와 오늘날의 재벌체제 형성에 기여한 한국의 보수가 이런 시각을 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혁명적이라 부를 수 있는 재정구조의 변화를 통해 과감한 복지국가의 재원 확보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보수진영의 복지가 이런 발상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거나 인정한 일은 없다. 그들의 재정동원 상상력이란 너무 빈약하다.
지금 이 시점 유권자에겐 보수의 복지와 진보의 복지 중에 어느 것이 ‘진짜’ 복지인지를 감별하는 지혜, 그것이 절실하다.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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