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명색이 핵안보정상회의라면
‘핵클럽’ 국가들이 핵무기 감축이란
구체적 의제를 가지고 모여야 한다
‘핵클럽’ 국가들이 핵무기 감축이란
구체적 의제를 가지고 모여야 한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세계 50여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하는 행사인 만큼 국제 규모의 대형 이벤트임이 분명하다. 서울에서 이런 큰 행사가 열리니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다시 한번 체감된다. 이번 회의의 주요 의제인 핵테러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이 사뭇 중대한 이슈임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회의가 정부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모습을 보면서 아쉽고 허전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목표는 테러리스트들이 핵물질을 확보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막고, 어떻게 하면 핵시설을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핵문제의 더 중요한 부분은 핵무기의 감축이고, 더 근본적인 이슈는 핵무기를 안 가진 국가나 비국가행위자들의 핵 야망을 저하시키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물론 핵 야망 저하는 매우 포괄적이고 불확실성이 큰 국가 의도에 관한 것이어서 이를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핵무기 감축도 각국의 안보 이해가 상충하고 있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핵 야망 자체를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다소 쉬울 수 있다. 게다가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는 핵무기 비보유국의 핵 야망 저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 핵 이슈에서 그 어떤 부분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핵군축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정하고 있는 핵보유국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의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핵무기 없는 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을 위반해 핵 보유를 시도하는 경우는 물론, 이 조약을 탈퇴해 핵을 개발하는 경우도 강대국이 주도하는 제재를 받는다.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에 남아 있으면서 핵무기 개발국으로 의심받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이 조약을 탈퇴해 핵실험을 했다고 해서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핵무기 없는 나라가 핵무기를 가지려고 하면 어떤 경우든 제재를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핵군축의 의무를 위반하고 있는 강대국들에 대한 제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실질적인 제재가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이다. 핵확산금지조약에 따라 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가 인정되는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의 핵클럽이 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강력 제재수단인 안보리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핵과학자연맹(FAS)은 핵클럽 국가들이 현재 1만9000기 정도의 핵무기를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명색이 핵정상회의라면 이들 국가들이 핵무기 감축이라는 구체적 의제를 가지고 모이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이것이 훨씬 급하다. 핵무기를 없애는 데는 정상들의 논의가 필수적이지만 핵테러를 막는 논의는 더 낮은 수준에서 기술적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면 된다. 핵테러 저지에 반대할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핵군축을 미루고 핵테러 정상회의를 서두르는 데에는 제국주의적 도덕기준이 적용되어 있다. 강대국의 핵은 적의 공격에 대한 억지용이고, 미국이 말하는 불량국가(rogue state)나 테러단체의 핵은 공격용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핵은 수비용이니까 괜찮고 이란의 핵은 공격용이어서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미래의 핵은 위험하고 현재의 핵은 별문제가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고, 그런 미국은 여전히 8500기(FAS 산정)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다. 핵확산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핵을 없애는 일은 훨씬 더 급하고 중요하다. 그래서 핵감축 논의 없는 핵안보정상회의는 공허하다.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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