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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늑대, 쥐, 기생충, 바이러스 / 김형완

등록 2012-04-02 19:31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외부에 있는 줄만
알았던 적은
어느새 우리의
내면에 뿌리내린다
서민경제의 심각한 파탄에도 불구하고, 명품판매점 앞에서는 수천만원짜리 고급 핸드백을 사기 위해 줄선다는 얘기를 듣고는 바로 보드리야르의 ‘파노플리 효과’(effet de panoplie)가 생각났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아이들이 경찰놀이를 하면서 자신이 경찰인 것처럼 착각하여 행세하는 것처럼, 소비사회는 사람들이 고급 브랜드를 구입함으로써 스스로 상류층인 양 착각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헛것, 가상의 복제물(시뮐라시옹)이 실체를 가리고 대신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상류층의 계급적 천박성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그런 행태가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이제 어린아이들까지도 한 벌에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유명 상표의 옷을 선호하고, 빚을 내서라도 명품을 구입해야만 그 바닥에서 차별받지 않는 지경에 이른 걸 보면, 보드리야르의 주장은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소외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소외는 반드시 당대의 윤리와 규범, 가치의 일탈을 초래한다. 사람들은 불편한 정도보다는 안락한 편법을, 고달픈 진실보다는 화려한 허위를 택한다. 참과 거짓은 하등 중요하지 않고, 오직 유불리만을 따진다.(이게 엠비식 실용주의란다!)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심지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 외부에 있는 줄만 알았던 적은 어느새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종국에는 그야말로 적과 내가 얽히고 섞여 그만 한 몸통이 되고 마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적의 계보학’ 개념을 빌리자면, 적은 최초 단계에서 늑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늑대는 울타리 밖에 선명한 적으로 존재하니, 비록 그 공포와 폭력의 서슬은 시퍼렇되, 전선이 분명한 만큼 대적하기도 단순하고 쉽다. 다음 단계에서 적은 쥐(부디 특정인을 연상하지 마시라)의 형태를 취한다. 쥐는 야음을 틈타 은밀히 우리를 갉아먹는다. 지하벙커 같은 음습한 어둠을 좋아하며, 울타리를 아무리 견고하게 둘러쳐도 끈질기게 집안 깊숙이 들어온다. 우리들의 허술하고 지저분한 비위생성이야말로 쥐에겐 좋은 서식처가 된다. 쥐의 단계를 넘어선 적은 이제 기생충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부지불식간에 내 몸 안에 들어와 기생과 숙주의 관계로 진화한다. 숙주로 하여금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대게 하거나, 끊임없이 욕망하게 한다. 내 몸속의 적은 나의 탐욕을 조장하여 자신을 살찌운다. 숙주인 나는 날로 허허로워 치열하게 탐욕을 추구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생충만 살찌울 뿐이다. 그러나 아직은, 적은 나와 구별되는 타자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만큼 대적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 적이 바이러스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적과 동지,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없어진다. 적이 나인지, 내가 적인지 헷갈린다. 적의 낯선 타자성이 사라지고 어느덧 내 안에 내재화된다. 심지어 적은 나로 하여금 나를 타자화하여 주체를 전복시킨다. 소외와 일탈이라는 비정상성이 일상화되어 정상성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일종의 착란상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언제인가부터 지난날의 가슴 시린 민주주의 기억을 망각한 채 탐욕의 언어를 아무런 부끄럼도, 거리낌도 없이 서로 주고받아 왔다. 고달픈 진실보다 화려한 허위를 택했다. 참과 거짓의 분별보다는, 유불리를 주로 따졌다. 그래서 행복해졌는가. 그 어느 때보다 살 만한 세상이 되었는가. 자식들에게 부끄럼이 없는 나라가 만들어졌는가. 당신의 적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늑대인가, 쥐인가, 기생충인가, 아님 바이러스인가. 선거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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